대화와 토론

함께 살아가는 지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8. 26. 09:22

 지혜

 

 

어느  공동체에  열명이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의를  하기를 -  우리  열명  가운데   가장 문제 많은  한 사람을  제명해서  조용히  살기로  했습니다.

얼마후에  또 다시  회의를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공동체에  문제가  있으니   그 문제가 되는 사람을  제거하자하고  투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조용했습니다. 천국 같았습니다.
다시  얼마지나   또 투표를  했습니다. 마침내는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남은  두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느 날   서로  투표하자고  했습니다. 같이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공동체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화두는  단연  "개혁"입니다.
부패된 부분을  도려내고  솎아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바람. 새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대단히  좋고   아주 의욕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조치 가운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것을  간과하는것  같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누구어야  하는것과 개혁의  주체는  어떤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개혁할 사람중에  그 누가  그 옥석을  가려낼 것입니까. 또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개혁할것이 없을  정도로  "의인"인 것입니까.
개혁에는  그 만큼  조심스러운것입니다. 망설임과   겸비함이   함께 해야  할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로서의  "개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개혁의  주체가  될수없는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기 전에   네눈의  들보를 보라" 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들은  먼저   스스로  겸비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도  많은  개혁의  대상이 될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자만을  깨닫지 못하면  그 "자만"은   죄의  뿌리임으로  나중에, 멀지아니해서  그  자만이  스스로   파멸의   구렁을  파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험한것은  스스로의  잣대로  개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잣대란   상대적인것입니다.

더욱  위태한것은   개혁의 주체들이   자신들의  죄성과  자기들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덧  벌써  의인의  행세를   할려고 하는  과욕이 보입니다.

개혁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몸의  수술보다  더 어려운 과제임을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우리들.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개혁은  항상  나 자신의  회개에서  시작하는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개혁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함께  품고 나가는 것입니다. 제거해야할  대상이  아니고,  함께  품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살아야 할   구성원입니다.

무엇보다도   개혁의  선두에 서있는 분이   하나님앞에  겸비하게 엎드리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