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씨앗에는 그 자체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14. 11:37

세자녀 폼^^

콩이나 옥수수, 아니면 수박씨나 호박씨를 쪼개어 살펴보자.

그 안에 생명이 보이는가?

참 신기한 것은 그저 작은 돌멩이와 같이 생긴 그 딱딱한 씨에서 어떻게 싹이 나고 어떻게 자라는지 신기할 뿐이다.

더구나 그 여리고 여린 새싹이 단단한 껍질과 굳은 땅을 뚫고 나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씨를 뿌리지 않는 농부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씨는 농부가 뿌리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니까.

그래서 씨를 뿌린 후에는 가만히 싹이 날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때가 되면 싹이 나고 어느새 자라서 열매를 맺힌단 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

 물론 처음에 예수를 믿으면서부터 열심을 내고 신앙이 급성장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이다.

대부분 처음에 교회 나온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이 예수를 잘 믿을 사람인지 오늘 한 번만 왔다 갈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렇게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이 눈이 띄지 않기 때문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이런 새신자 말고 예수 잘 믿는 집사님이 이사오지는 않나?'하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신앙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보면 갑자기 커져있음을 보게된다. '꽤 신앙이 성숙했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믿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주변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 하루아침에 거목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밭에 씨앗을 뿌려놓았다고 해서 그냥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줘야 하고 잡초가 나면 뽑아주어야 하고 벌레가 생기면 잡아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꾸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분들이 사역자들이다


고린도전서 3:5∼8을 보자.

싹이 나고 자라게 하는 과정에서 두 사역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씨뿌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싹을 틔우거나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그러니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신앙의 성장은 신비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가운데 싹이 나서 자란다. 생명체에는 세 가지의 신비가 있다. 생명 발생의 신비, 생명의 자람의 신비, 그리고 생명 사망의 신비이다.

 

성도란,  예수를 믿고 복음으로 생명이 싹텄다.

그러므로 이제 자라는 것이 중요한데 자라기 위해서는 잘 가꾸고 보살펴주어야 한다.

 예배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들어야 한다. 생명에는 과정이 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하나의 작은 생명에는 반드시 과정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서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