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하나님께 영광 - 엡 3:20∼21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10. 14:13

귀여운 강아지

 

어떤 중국인과 미국 청년이 대화하는 중에 중국인이 물었다.

"당신네 미국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수염을 깎고 세수를 한다." 그러자 중국인은 "그래요?

우리 중국 사람은 제일 먼저 옷을 입는데요" 하면서 서로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하루의 생활에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피워 무는 사람이 있다.

신문부터 들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우선 순위를 바로 택하는 것은 그날의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눈을 뜨고 첫 발걸음이 교회를 향한 발걸음이라면,

하루의 첫 마디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면,

처음 듣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런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일생의 우선 순위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실로 누구에게나 중대한 문제이다.

어떤 이는 돈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산다.

 어떤 이들은 권력을, 어떤 이들은 지식을, 어떤 이들은 명예를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들 자체가 인간의 삶의 최고 목표가 되겠는가 하는 문제는 깊이 생각할 여지가 있다.

 돈이나 지식, 지위나 명예 등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삶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최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목표를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의식문제에 목표를 두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또 생각할 우선순위의 일이다.

 

 하나님은 대대로 영원 무궁히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대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이 신하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고 고백한 유명한 말이 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단 2:47).

또한 메대왕 다리오도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에 공포하였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단 6:26∼27).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 무궁히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고 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이 살아가신 짧은 생애지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셨다.

일찍이 예수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 하셨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도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11:4) 하셨다.

 어떻게 나사로의 병들어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가?

예수님께서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섰을 때 아무도 그가 살아날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누이 마르다까지도 믿지 못했다(요 11:39).

그러나 굳게 닫친 나사로의 무덤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을 때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하고 기도하신 분이다.

 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죽음을 예견하시고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들여왔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28).

그렇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서 언제나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지상교회는 주님이 친히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다.

교회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단순히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몸이 머리를 위해 사는 것처럼,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하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자신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 값으로 산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전 6:19∼20).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넉넉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본문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대대로 영원 무궁히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는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심지어 생각하는 것에까지 더 넘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도 풍성하고 넉넉한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늘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이 좁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무엇이든지 또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알아서 적당히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여행을 하다가 난데없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아침 저녁 매일 만나만 먹으니 정력이 쇠약해졌다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 11:18-20).

모세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남자 장정만도 60만 명인데 한달 동안 고기를 주신다니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정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맛보기만 주신 것이 아니라 무려 한달 동안 실컷 먹이셨다.

정말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나도록 먹이셨다.
벳세다 광야에 남자 장정만 5,000명이 운집해 있었다.

하루 종일 굶주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고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실컷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신 분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일천번제를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가 구한 지혜뿐 아니라 구하지도 아니한 부와 영광까지 주신 분이다(왕상 3:11∼1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자.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가 무릎꿇어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마음에 소원하고 있는 것까지 넉넉하고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까?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고 하셨다.

 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하셨다.

우리는 흔히 병든 것보다 건강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업이 잘 되고 돈이 잘 벌려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병이 들거나 대학에 떨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바울 사도가 몸에 병이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나?

 죤 칼빈이 몸이 아파 일찍 죽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는가?

오히려 돈 잘 버는 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가 더 많다.

건강하면서도 봉사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해서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교회를 멀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활 자세이다.

살든지 죽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또한 성경 야고보서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주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때 영광을 받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