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이 두 차이는 천국과 지옥 차이요,
또 영생과 멸망의 차이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전혀 다른 신분을 소유한 자입니다.
그러면 성도의 영적 신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면 분명히 성도의 신분과 불신자의 신분 이 두 가지 신분이 나옵니다.
성도가 되기 이전의 신분 즉 불신자의 신분을 먼저 살펴보면,
불신자의 신분은
①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입니다.
'안'이라는 말과 '밖'이라는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을 나타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예수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예수 안에 있느냐, 예수 밖에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②외인입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거나 사업차 방문하려면 그 나라의 대사관에서 발급해주는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발급한 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 자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외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 인침을 받은 백성인 것입니다.
③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고생이 되어도 소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가 있습니다.
죽도록 땀흘리고 수고해도 아무 소망이 없으면 일할 맛이 안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진들은 예수 안에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하면서까지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땀흘리고 수고하며 예수를 섬긴 것입니다.
④하나님이 없는 자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이와 같은 불신자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이후부터는 성도의 신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도의 영적 신분은
첫째,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자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절)
사람이 '가깝다, 멀다'는 말은 매우 차이가 많습니다.
지위가 높고 실력 있고, 도울만한 힘을 소유한 사람이 가까운 친구 혹은 동창, 가까운 친척, 가까운 이웃이라고 하면 절대 손해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해서 구경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며, 또 우리의 소원을 응답해주시고, 위험할 때는 막아주시며, 필요할 때는 채워주시고, 곁에서 귀를 기울여서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시며, 형편과 처지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멀어지게 했던 죄악을 씻음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를 눈과 같이, 양털처럼 희어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눈과 양털의 차이는 흰 것은 공통점이지만, 눈은 녹아지면 본 바탕이 나오고, 양털은 아무리 깍고 깍아도 그 양이 죽을 때까지 흰 털만 나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보혈의 피는 한순간에 우리를 깨끗하게 했다가 다시 또 흉악한 죄인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한 번 의롭게 한 이후에는 주님의 그 피가 우리에게 영원토록 보장이 되어 구속의 역사와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성취를 이루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어진 자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14절) 여기에서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 뜰에는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을 분할하는 칸막이 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이 담을 헐어주셨습니다.
하수도에 물이 막히면 내려가지 않아서 냄새가 나고 불편함이 많지요?
또 우리의 몸에 음식물을 섭취한 것이 소화가 되지 못하고 얹혀 있으면 고통스럽지요?
무엇이든지 막히면 안됩니다.
사업에도 길이 잘 열려야 됩니다.
기차가 달리는 선로나 고속도로도 막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담이 있는 사람은 지금은 형통한 것 같아도 언젠가는 그 길이 막히게 됩니다.
셋째, 새 사람으로 화평하게 된 자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예수 믿는 사람은 고린도후서 5:17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새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마음도 새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에스겔 36:26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다 하나인 것입니다(갈 3:28, 골 3:11).
넷째,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은 자입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8절) 우리는 얼굴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도, 개성과 직업이 달라도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성령은 동일합니다.
아프리카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필리핀 사람이나 성령 받고 은혜 받는 모습은 똑같습니다.
오순절 날에 마가 다락방에 임했던 그 성령과 오늘 우리가 받은 성령은 다 똑같은 한 성령입니다.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이렇게 인종이 달라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똑같은 기쁨, 똑같은 감사, 똑같은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어디에 가나 다 통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처음 만나도 평생에 함께 살던 사람같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다섯째, 성전이 되어진 자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1절)
성전의 특색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성전을 지으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다 성령의 전이 되어졌는데, 우리는 모두가 한 하나님을 모신 자입니다.
집에 있어도 그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사업장에 있어도, 집에 있을 때도, 운행 중에도,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에도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함께 거하심을 상징했으나(대하 5:13 ,14),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육신으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심으로(요 1:14)
구약의 성전이 예표하던 것을 성취시키셨고(요 2:19),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모든 신자들 속에 거하시어 성도들 각 개인이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전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어졌으며,
새 사람으로 화평하게 되었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으며,
주 안에서 성전이 된 이 놀라운 성도의 영적 신분의 권세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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