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

불경 속의 ET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6. 11:28
옛 불경 책을 뒤지다 보니 도판(圖版) 그림에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 작은 괴물이 섬뜩하게 눈길을 끌었다. 짓눌린 듯한 머리며 뽑아놓은 듯한 목이며 그 몰골이나 풍기는 인상이 요즈음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외계인 ET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ET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 불경을 뒤져 보았을 리 없을 터인데 우연한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내계인(內界人) 아닌 외계인(外界人)이나 이승 사람 아닌 저승 사람의 몰골을 상상하는 데는 동서(東西) 간에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기만 하다.
불경 속의 ET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왕자 아사세다. 기구한 아사세 왕자의 전생은 그의 몰골만큼 기구했다.
고대 인도 왕사성(王舍城)의 왕비 위부인(韋夫人)은 중년이 넘도록 왕자를 못 낳았을 뿐 아니라 용모가 쇠퇴하여 임금님의 사랑이 증발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어느날 한 예언자로부터 산중(山中)에 사는 한 선인(仙人)이 죽어 왕자로 환생하게 돼 있다는 예언을 듣고, 죽으려면 3 년이나 남아 있는 선인을 살해하고 아이를 밴다. 이 어머니의 에고이즘이 귀고(貴苦)가 되어 괴로워한 끝에 높은 탑 위에서 뛰어내려 낙태를 시키려 했으나 끝내 태어나고 만 것이 아사세다.
그 낙하(落下) 충격으로 머리가 납작해지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 인간 욕망의 악연(惡綠)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생원(前生怨) 때문에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불쾌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ET 붐이 일면서 자녀를 살해하는 어머니가 줄줄이 신문 지면을 오염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끓는 물을 부어 살해한 어머니도 있었다. 내 자식을 사유물(私有物)로 여긴 동반자살(同伴自殺)로 동정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인간 욕망의 폭력이요, 전생원의 위부인 컴플렉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ET는 외계인이 아니라 내계인이다. ET의 몰골을 그래서 나는 싫어한다. 인형이나 만들어 외국에 팔아 돈이나 벌지,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