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러 이야기들

유전학의 선구자인 멘델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7. 21. 09:20

생물


유전학의 선구자인 멘델(멘델 Mendel, Gregor /1822-1884)은 교원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낙방했습니다.

 그것도 생물학 점수가 너무 나빴기 때문입니다.

시험관은 그의 생물학 성적표에 "마치 초등학교 학생의 대답을 방불케 하는…"이라고 혹평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낙방한 그는 교원자격 얻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완두콩 교배실험을 시작해서 생물학 역사에 길이 빛나는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는 체코공화국의 영토인 슐레지엔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9세인 1851년부터 3년 동안 빈 대학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1854년부터 14년 간 수도원에서 생활했습니다.

 이 수도원 생활동안 그는 유명한 완두콩 실험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완두콩 교배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1865년에 브륀 자연사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였습니다.

그 논문에는 그가 발견한 세 가지 유전법칙, 즉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 우성의 법칙이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크게 낙담한 멘델은 더 이상 완두콩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16년이 지난 1900년에야 세 사람의 식물학자 드 브리스(Hugo De Vries)와 코렌스(Carl Correns) 그리고 자이제네크(Erich Tschermak von Seysenegg)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실험결과가 멘델의 논문에 제시된 것과 일치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멘델의 논문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이해하고 체계를 세웠습니다.

이어서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유전자'가 발견되었고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유전학은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멘델의 완두콩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 못한 학자들 때문에 멘델은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가 계속 연구를 하였다면 아마 유전학은 더 일찍이 큰 발전을 이룩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죽은 16년 뒤의 학자들마저 그의 연구를 토대로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을 보면 그는 상당히 체계적인 연구를 한 것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남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사랑이며 베풂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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