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와 진리

'가난'에 대한 여러 가지 성경적 의미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28. 11:25
 가난


성경에서는 '가난' 혹은 '빈곤'(貧困)이란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빈곤과 가난은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악(惡)이라는 것입니다. 잠언 6:6-11에 나타난 '게으름'(懶怠)에 관한 잠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
그러면 빈궁(貧窮)이 강도같이 오고
네 궁핍(窮乏)이 무장한 사람처럼 올 것이라(참조, 잠언 14:23).


둘째로, '가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형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레 26:14-26).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극심한 가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형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상의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말하고 있는 가난과 빈곤의 의미는, 빈곤은 타락한 세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악'(惡)이며 '혼란'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창조세계(good creation)를 원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빈곤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종종 많은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가난을 낭만적으로 미화시켜 마치 빈곤 그 자체가 선(善)한 것처럼,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德目)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빈곤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셋째로, 성경에서 가난과 빈곤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연관 시켜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특별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은 메시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빈곤과 가난이 일종의 고난의 형태라면 가난과 빈곤이 메시아와 어떠한 관련성을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사야 53장과 같은 구약의 성경들은 가난과 빈곤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빈곤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그의 외모에는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무 것도 없으며… 그는 멸시를 받았고…"
이러한 묘사는 빈곤과 가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늘 가난한 자들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그분의 출생 이야기는 바로 이 사실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마 25:34-46의 기사는 예수님께서는 옷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옷을 주었던 가난한 사람들과 자기를 동일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후에 신약 성경은 예수의 성육신(成肉身) ― 성육신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연대(連帶, solidarity) 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사건을 빈곤이라는 말로 요약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를 부요케 하려 하심
이라"(고후 8:9).

구원의 역사에서 빈곤이란 주제가 이처럼 중심적 동기(動機)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인간의 궁핍과 고난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고 인간과 연대관계(solidarity)를 깊이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가난과 빈곤이 그 자체가 '선(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욱이 빈곤과 가난은 일종의 사회적인 고난의 형태로써 그리스도는 기꺼이 이러한 사회적 고난을 감당하시고 그곳에서 해방을 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빈곤을 메시아적인 고난의 한 측면으로 이해함으로써, 빈곤은 기독교인들의 생활 속의 '덕'(德, virtue)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여기서 '가난한 자'란 그들의 빈곤을 통하여 행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가난'을 일종의 덕(德)이라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은 사회적 상황으로서의 빈곤과 한 개인이 지니게 되는 도덕적·영적 성향으로서의 빈곤을 말씀하시면서 이 두 가지를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 상황으로서의 빈곤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상황으로서의 빈곤은 아마 도덕적 갱신의 바람을 일으킬 여건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부패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오심과 빈곤을 서로 연결시켜서 말씀하시고 있는 이유는 빈곤은 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빈곤과 가난은 은총에 대한 민감성, 하나님을 향한 의존성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게 하는 감수성 등을 일으키게 하는 조건입니다. 즉 가난하게되면 은총과 은혜를 더욱 갈망하게되고 하나님만을 간절히 의지하도록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부와 권력이 있을 때보다는 가난 속에 있을 때 사람은 더욱더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께 대한 의존에 대하여 간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섯째로, 빈곤과 부(富)와의 관계성을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서는 부(富)를 직접적으로 죄와 동일시(同一視)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부(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영적, 도덕적 위험성들에 대하여 경고하긴 하셨지만(막 10:17-25에 기록된 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부(富)와 재물 자체를 배척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유한 자들에게 부(富)에 대한 모든 조건적인 집착을 포기하라고 훈계하신 것입니다.

'기초와 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의 이해1 - 문화적 상황  (0) 2004.06.29
사역자의 일그러진 영성  (0) 2004.06.28
금식에 대하여  (0) 2004.06.26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생이 타락하면...  (0) 2004.06.26
[스크랩] 천국  (0) 200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