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신앙과 이성이 서로 모순된 것 같은 오해에 접한다.
신앙은 맹목적이고 이성은 합리적인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과 이성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며, 보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변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결코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하셨다.
마음과 뜻과 정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지와 지성과 감성, 이 모든 총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정적인 것, 의지적인 것, 지적인 것 이 어느 하나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정적인 것만을 주장하면 허무주의자가 되며, 의지적인 것만을 주장하면 윤리주의로 빠져들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분리가 된다면 균형이 깨져서 이 사회 속에서 적응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인격 구조는 지. 정. 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정적인 변화, 지적이며, 도적적이며, 의지적인 변화가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이 사회 속에서 바르게 설 수 있다.
우리는 이 사회와 떨어져서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만나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유리될 때 그 변화는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우리의 거듭난 신앙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 둘 사이에서만 끝나면 안 된다.
우리의 변화로 인하여, 우리의 거듭남으로 인하여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야만 한다.
이 땅 위에서 나와 너의 관계, 교회와 지역의 관계, 기독교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회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거듭남의 역사가, 기독교의 변화가 개인의 변화에만 그쳤다면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 제자들과 그 자리에 계셨지 결코 산 아래로 내려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화를 통하여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의 거듭남은 사회적인 변화를 함께 요청하고 있다.
변화의 한복판에 서있는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이 거듭난 새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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