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25. 08:56

주은

 

사람들은 원래부터 '나와 너'라고 하는 사랑의 욕구, 그 사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하나님께서는 분명 당신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하셨다.
하나님께서도 '나와 너'라는 사랑의 관계 속에 계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 복음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성령을 파견하실 때에도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도 홀로 외톨이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사랑의 관계 속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명확하게 신앙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존재의 근본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내적 친교, 곧 사랑에의 일치이다.

우리는 이러한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 사랑의 만남으로 창조가 되었다.

사랑의 관계 속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처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 분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분의 모습으로 그 분을 닮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현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고, 우리 모두가 창조된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여 더욱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 더욱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 곧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지음받은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자 노력하고 있었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나와 그것'의 관계인지 아니면 '나와 너'의 사랑의 관계인지 점검해 보자.
나와 가까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 나의 이웃들 등 많은 만남 속에서 속에서 나는 과연 '나와 너'라는 사랑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나와 그것'의 이해타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는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곧 내 가족 안에서, 나의 우정 안에서, 내 이웃 안에서 실현해 나가야 할 사랑의 신비, 우리 삶의 최고의 가치이다. 사랑의 최고의 표현방법은 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