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있었던 조금은 유모스러운 이야기가 하나있다.
스물도 채 안된 나이에 유복자를 혼자 키운 가난한 청상 과부가 있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했고, 아들 또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착실히 공부하여 일찍 장원에 급제를 하였다.
아들은 바다가 가까운 어느 고을의 원으로 부임을 하였다.
효성스런 아들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여 이방을 불렀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조기 대가리를 좋아하시니 조기 대가리를 사 모아라."
눈이 휘둥그레진 이방에게 효성스런 원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조기 살은 비위에 맞지 않으신다고 하시며 아니 잡수시느니라."
얼마 후, 아들이 보낸 수백 개의 조기 대가리를 앞에 놓고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한숨을 지었다.
"내 아들이 내 식성을 잘 알고 있구나."
너무 귀한 아들이라고 감싸주고 위해주기만 했기에 어려운 살림에 어쩌다 사 먹는 생선의 살 한점 조차도 아들에게만 먹인 어머니의 마음을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너무 소중하게 감싸고 있다.
응석받이로만 기를 뿐, 매는 고사하고 잘못을 해도 꾸짖을 줄 모른다.
교회에서 막무가내로 떠들어도, 남의 물건을 망가뜨려도,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해도 야단치지 않는다.
대개 자녀들이 많지 않으니까 사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사 주고, 하고 싶다는 것은 다 시켜준다.
옷을 사서 몇 번 입다가 싫으면 팽개치고, 학원도 여기 저기 다니다 싫증나면 그만둔다.
한두 번 안 된다고 하다가도 아이가 울면 손을 든다.
그러니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교회에서건 자기 뜻대로 안되면 심통을 부리고 운다.
이렇게 귀하게 키우다 보니 버릇이 없다.
보다 못한 사람이 옆에서 한 마디 하면 "내 자식인데 참견 말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내 자녀'가 아니라 '우리 자녀'이다. 내가 잘못 키운 이 아이가 자라서 장차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제 가정에서 문제아가 나온다.
어떤 심리학자는 문제아동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부모가 문제라고 했다.
사랑하는 방법이 문제요, 교육시키는 자세가 문제이다.
디모데전서 4:8을 읽어보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그렇다. 피아노를 치고 태권도나 영어를 배우고 하는 육체의 연습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우리가 더 힘쓸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경건의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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