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신앙은 웃음입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19. 12:29
꽃밭


신앙은 웃음이라고 말하면 여러분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물론 칼빈은 이점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볼 때 칼빈도 이점에 관해서는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신앙은 미소와 웃음과 환희를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곧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창 17:17)는 에피소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에 대해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우습게 여겼거나, 아니면 그것을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무시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면 종종 그런 것처럼, 아브라함의 웃음은 한편으로는 기쁨에 들떠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깜짝 놀라서 웃음이 터진 것입니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기가 막혀서 아브라함은 '허허!' 하면서 웃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예측치 못한 일들이 우리의 기를 막히게 하고, 경탄과 놀람의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경험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소식을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명의 나그네를 통해서 다시금 말씀하셨을 때, 사라는 천막 뒤에서 웃었습니다(18:12). 아마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에피소드들 중에 가장 코믹(comic)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에게, "네가 웃었다"고 하자 사라는, "아닙니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금, "네가 웃었어!"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사라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차지해 놓고서라도, 본문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미 출산의 때를 한참 넘긴 할머니가 아이를 출산할 것이라는 충격적이고 예측치 못한 소식은 사라의 웃음을 자아냈던 것입니다. 아니 웃음은 충격적인 좋은 소식에 대한 인간의 반응일 뿐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자녀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는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습니다: "이 일(사라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듣는 사람은 모두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창 21:6).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laughter)이었습니다.

왜 이 두 늙은이들이 웃었을까요? 프래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시적인 산문체로 다음과 같이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무덤에 한 발을 들이고 있는 한 노파가 또 다른 한 발을 분만실에 들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사람은 오직 바보들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어쨌거나 믿을 것이라고 기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그것을 믿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절반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정말로 그 사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웃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뷰크너는 너무도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은 웃음이라 불리는 자녀에 대한 약속에 대해 웃는 것입니다."(Faith is laughter at the promise of a child called laughter). (Frederick Buechner, Wishful Thinking: A Seeker's ABC,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3], 29)

돌이켜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은 불신앙이 아니라, 신앙에 그 뿌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충격적이고 놀라운 소식에 웃음보다도 더 적절한 반응이 어디 있겠습니까? 웃음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반응이 아니겠습니까? 웃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장 적절한 행위입니다. 동시에 웃음은 하나님의 예측불허의 방식들에 대한 인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자비들과 기가 막힌 애정들에 대해 즐거워 할 때 웃음은 자연스런 표현일 것입니다. 웃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들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표현하는 무언(無言)의 방식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음미할 만한 가장 중요한 신앙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앎과 신뢰를 부단히 흔들어 놓는 수많은 회의와 의심에도 불구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끈질기게 기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신선하게 그것도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어 치료하시면서 일하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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