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신앙은 신뢰(信賴)하는 것입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19. 12:21
난


건강한 가정에서 양육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신뢰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항상 보호해주시고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그들의 아버지들은 항상 든든하게 그들 뒤에 서서 그들을 지지해 주거나 용기를 주시고, 연약하여 낙심할 때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시면서 격려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압니다. 그들은 그들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어 괴로워하거나 힘을 잃고 낙담하고 있을 때 그들의 어머니들이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추스르시며 달래줄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와 같이 신자들 역시 삼위하나님의 건강한 가정에 있는 자녀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호되고 위로 받으면서 성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 속에서 신자들은 그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분의 지혜와 계획에 대해 확신을 갖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안식을 얻으며 편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사실을 매우 단순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진실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3.2.29). 만일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신뢰한다면,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신뢰하고 믿는 다는 것은 절망과 근심으로 직행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자들의 신뢰는 창조주에 대한 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믿음은 신앙의 다양한 모습들 중 '신뢰'(trust)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창조주에 대한 신앙은 우리가 창조에 관한 기사를 신앙고백문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모두 야웨의 것입니다"(시 24:1)는 신앙고백으로 창조기사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실체들이 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밝고 화창한 이야기며, 찬양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1장에는 인간존재들과 짐승들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밝고 명랑하게 걷는 기나긴 행렬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즐거운 행렬들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어두운 그림자나 위협의 세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선한 창조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선하게 유지시켜 주시고 있다는 신뢰를 만듭니다. 아무리 인간존재의 깊은 곳으로 우리를 끌어가는 세력이 있다하더라도, 수렁과 암흑 속으로 우리가 끌어 내려가는 힘이 작동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이상 그 세력이 우리를 넘보거나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창조주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창세기 2장을 통하여 더욱 심화되고 분명해집니다.

창세기 2장은 우리를 만들기도 하고 깨어 부수기도 하는 '세력'(power)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힘'과 '세력'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모습 안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도공(陶工, potter)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통해서입니다(창세기 2장). 하나님은 도공이시며, 우리는 그 도공의 손안에 있는 진흙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연약한 질그릇과 같은 우리를 진정으로 '해방시켜주는 신앙'(liberating faith)이라는 것을 특별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분 손안에 있는 진흙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분이 만들어 놓은 도자기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때(창조주 신앙), 우리는 그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여야 한다는 믿음이 생길 것이고, 이러한 신앙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모든 불안과 초조,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해방시켜주는 신앙이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니었더라면, 그분의 손안에 있지 않는다면, 질그릇 인생의 운명은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깨어짐,' '부서짐' 이외에 달리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그 손안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면 사람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에서 떨어지는 도자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H. M. Kuitert, I Have My Doubts [London: SCM Press, 1993], 52).

미국 장로교 선교사였던 벤자민 와이어(Benjamin Weir)는 1980년에 중동의 레바논에서 과격분자들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손과 발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눈을 가리우고 어디인가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납치했는지, 왜 자신이 납치를 당해야 했는지,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지극한 두려움 가운데 수많은 암흑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때 성경 한 구절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잠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웨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오, 주님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은 제가 어떻게 여기에 와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십니다. 주님은 나를 사로잡은 인질범들이 누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주님의 손안에 제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하여주십시오!" 그는 다음과 같이 그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나는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영혼아, 하늘의 왕을 찬양할지어다'라고"(Benjamin and Carol Weir, Hostage Bound, Hostage Free [Westminster Press, 1987], 37-38). 가장 절망적이고 고독한 날들이 무한정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에, 와이어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뢰가 그 자신을 굳게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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