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다.
말처럼 기뻐하라면 기뻐지고 즐거워하라면 즐거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를 염려스럽게 하는 것들.
바울 사도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2004년을 살고 있는 오늘 한국의 상황은 염려스러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
한국의 유수한 재벌들이 퍽퍽 쓰러지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각 기업체들의 강력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대학을 갖 나온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최근 석유폭등으로 인한 한국경제는 흔들리고, 바닥증시는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다.
한결같이 불안한 소식이요 우리를 염려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옛날 홍해 앞에 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앞에 부딪힌 환경을 보고 불안하여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항상 기뻐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기뻐하시겠는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자.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25∼32).
어떤가? 주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가 앉아서 염려하고 걱정하여 문제가 해결된다면 밤을 새워가며 염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염려한다고 환경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염려한다고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냥 우리가 걱정되어 하시는 빈말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우리가 같이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은 배짱이 두둑해서가 아니다.
우리 뒤에 든든한 후원자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여러분과 우리의 보혜사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앉아서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한다.
약속의 말씀인 4:6∼7을 읽어보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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