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악한 세대로부터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 보면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가 물을 통과하여 구원받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물을 통해 구원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을 알려고 하면 우리는 노아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첫번째 타락에서 사탄의 악한 본성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사탄의 악한 본성은 두번째 타락인 가인의 시대에서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문화로 발전시켰습니다.
거기에는 종교가 있었고 많은 발명품과 예술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최초의 시인 살인의 노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문화가 얼마나 악하고 패역한 것임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타락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는 세대를 형성해 나가면서 커다란 조직을 만들어 악한 시대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갑니다.
시대는 항상 그 시대에 맞게 유행을 만들어 가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머리카락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것이 유행이며 사람이 만들어낸 문화요 세대인 것입니다.
네번째 타락에서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배역하게 되는데, 이 모든 배후에는 세상의 왕인 사탄이 조정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을 성경은 '어두움의 세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악하고 거스리는 세대에 노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하나님의 정죄 안에 있었으며, 하나님을 거스리고 거역하는 패역한 세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죄함으로부터, 그리고 타락하고 패역한 세대로부터 건짐을 받아야 했습니다.
건짐을 받기 위하여 노아는 120년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건축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며, 세상을 심판하는 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의 구조를 살펴보면 3층으로 되어 있고, 맨 밑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탔고, 2층에는 정한 짐승들이 그리고 3층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방주는 교회를 표현하고 있는데, 교회는 2000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또한 새로운 역사를 열어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도 처음에는 부족하고 불의한 것들이 우리에게 많이 있었지만, 교회생활을 통하여 그러한 부분들이 점점 깨끗해지고 정해지는 것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방주의 안팎으로 역청을 칠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의미하는데, 이 피는 어떤 재난이나 재앙이 엄섭해 오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해치 못하도록 막아주며 그 속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2절에 보면 방주는 우리를 구원하는 표임을 또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은, 노아가 죽음의 물을 통과하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물을 통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의 역사를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며 공허하여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을 운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물은 바다를 가리키며, 바다는 사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지구는 바다 속에 잠겨 있었으며, 이것은 세상이 이미 사망 안에 갇혀있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의 물인 세상을 십자가을 통하여 통과 하여야만이 세째날에 뭍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인데, 노아가 그리스도이신 방주 안에 있음으로 홍수를 통과하고 세례를 받은 것처럼, 세례 받은 사람들은 다 방주 안에, 즉 교회 생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생활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패역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세상과 함께 다 수장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세례 받은 사람들은 십자가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끝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분별됨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 세상은 십자가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세상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우리를 삼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과한 흔적이 있어야, 세상에 나가서도 세상과 성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인 애굽을 탈출해야 합니다.
애굽의 뒤에서 바로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점령하여 노예로 삼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산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종속되어서 종살이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통과함으로 애굽에서 탈출하였고, 애굽의 바로왕의 군대들은 물에 다 수장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며, 그 심판의 물에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은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살리시어, 그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는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끝났고 부활한 생명이 나로 하여금 멸망이 없는 새로운 시대로 열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방주를 건축하는 사람들이며, 교회 생활을 통하여 서로 서로 건축되고 짜여지고 조성되며, 또한 마찰이 있을지라도 서로 용서하고 서로 다듬어지면서 만들어져 나가고 우리가 생명의 빛 가운데를 걸어갈 때에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빛추이고 비추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살며 가르칠 때에 우리는 이 시대에 방주를 건축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방주의 건축이 끝나게 되면 우리는 새 예루살렘으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교회생활 안에는 비록 부정한 사람도 있고 정결한 사람도 있으며 또 성숙된 사람도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생활 안에서는 모두가 살게 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는 오늘의 방주요 그리스도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살길이 있으며, 이 방주 안에는 사망의 물이 결코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교회를 방주로 하여, 그리스도안의 풍요로움을 사는 은혜와 풍성을 누리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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