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러 이야기들

저도 한때 잘나가던 교사였답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6. 4. 25. 13:48
“저도 한때 잘나가던 교사였답니다”
시각 장애인 한용석씨
 
 

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정보화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용석씨(40·시각장애).

그에게 지난 2002년은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11년 동안 촉망받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그는 부인과 아들 둘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평범한 가장. 어느날 그에게 먹구름 처럼 시커먼, 감당하기엔 큰 시련이 서서히 다가왔다.

'망막색소변성증'. 현대의학으로는 아직 발병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병으로 인해 그는 시력을 점점 잃어갔다. 정말일까. 정말 나에게 몹쓸 병이 찾아온 걸까. 믿기지 않았다. 절망의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주변에게 조차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꿋꿋하게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시력을 상실한 그는 더 이상 교단에 설 수가 없었다. 그는 학교를 떠났다. '촉망받고 젊은 유능한 교사'의 삶이 순식간에 '시각장애인'의 삶으로 내딛게 된 순간이었다.

힘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밝은 삶을 살아왔고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의 미래를 꿈꿔 왔던 그였기에 무엇보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다.

잘 나가던 초등학교 교사에서...시각장애인으로

결국 그는 마음의 문까지 걸어 잠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꼭꼭 가둔 그는 가족과의 연락마저 끊은 채 쪽방 생활을 시작했다.

그 작은 방에서 그는 고민했다.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에겐 절망을 부둥켜 안고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망연자실한 채 방바닥에 엎드려 있을 여유가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더욱이 시력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 됐기 때문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가까스로 찾아간 곳은 시각장애인복지관.
시력을 잃기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다뤘던 분야가 컴퓨터였다. 덕분에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정보교육 자원봉사까지 하게되는 기회를 얻었다.

정보화교육 방문교사, 노인복지센터 강의 등 많은 일들이 그에게 주어졌다. 급기야 2003년 10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정보화교육 담당으로 제주시각장애인복지센터로 오게 되면서 그의 또 다른 삶은 시작됐다.

"그래,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자!"

처음 제주행을 결심했던 것은 막연하게나마 '나를 모르는 곳, 전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일종의 도피처로서의 선택이었다. 다행히 2년 넘는 제주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조금의 안정을 가져다 준 듯 했다.

"수강생들이 연세가 있으신데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라 정보화 교육을 하느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성을 갖고 수업에 임하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면 그런 분들을 위해 그만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시각장애 뿐만 아니라 지체장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도에서 9개월간 꾸준히 정보화교육에 참여해 온 수강생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한용석씨. 그는 방학중에 실시한 정보화교육으로 컴퓨터 실력이 월등히 향상된 영지학교 시각장애반 아이들에게서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고친다고?...장애 교육생에게서 큰 '보람'

"정말 시각장애인들이야 말로 정보화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 시각장애인은 정보화교육을 받은 후 걸음걸이까지 자신있게 변화됐다"며 "집에서 컴퓨터로 음악도 듣고 다양한 정보도 접하면서 그 분 생활자체가 전보다는 많이 풍요로워졌다"는 그에게서 애절함이 묻어난다.

그는 정보화교육 뿐만 아니라 컴퓨터 설치와 수리 까지도 척척해 내는 컴퓨터 박사.
여러 기관이나 단체에서 지원 받은 컴퓨터를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설정하고 보급할 뿐 아니라 고장났을 때는 수리까지 도맡아 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보화교육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음성출력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해도 시각을 사용해야 하는 '이미지 파일'이 많아 정보접근성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이 현실.

"교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엘리트에 속한다는 자신감으로 생활했었는데... 시력을 잃고 나니 여러가지 일들이 벽에 부딪혀 정말 할 수 있는 것들이 한 없이 줄어들더군요."

흠뻑 빠진 달리기..."머릿속 고민 잊을 수 있어 좋아"

"처음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나서 할 일을 찾았을 때 시각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일은 안마사나 텔레마케터 정도가 고작이었어요. 장애인들에 대한 정책들이 근본적으로 더 성숙돼야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직업재활이라는 한씨.

그는 "사회적 성숙도 필요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의 성숙도 필요하다"며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각도 변해야 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 떠 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의 변화를 강조했다.

한씨는 요즘 달리기에 흠뻑 빠져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달리기를 할까 걱정부터 앞서는 기자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못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라"고 일침을 놓는다.

학창시절에도 운동엔 유난히 소질이 없었다는 그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건강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절실함에서였다. 먼저 대기고등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처음엔 반바퀴, 두번째는 한 바퀴...

처음에는 1~2바퀴 뛰는 것도 힘들었다는 그는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점차 체력을 키워나갔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제 세상입니다. 시간도 잘 가고 무엇보다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그럭 저럭 갖가지 고민들을 잊을 수 있게 한 달리기를 시작한 지도 만 1년이 된다. 운동을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키며 자기자신과 싸워야 했던 그는 이제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숙소에서 월평동에 있는 직장(제주시각장애인복지관)까지 가뿐하게 뛰면서 출퇴근할 정도로 건강해졌다.

"비록 내 미래가 분홍빛은 아니....하지만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

"뭔가를 하나 시작하면 잘 멈추지 못하는 성격이라 지금도 뛰고 있는 것이 좋을 뿐인데...운동은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내 미래에 대해 분홍빛 꿈을 꾸지는 못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앞으로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이 더 나아지리라고 믿습니다."

얼굴에 웃음을 활짝 띤 그는 "타성에 젖어 안주해 버리면 생활자체도 그렇게 무기력해 진다"며 "이러한 생활 태도는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해당된다"고 힘줘 말한다.

장애인의 재활과 현실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중도 장애인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당부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정책 가운데 직업재활이 가장 시급합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문구용품 제작, 복권 판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직업재활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고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들이 마련돼야 합니다."

정부와 자치단체에 무엇보다 장애인의 직업재활 정책추진의 확대를 요구한 그는 "직업재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을 때 장애·비장애에 대한 차별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이 겪는 절망과 고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나 역시 그런 절망에 있었지만 마음을 추스릴 겨를조차 없이 가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지요".

당시를 회상하는 것 만도 버거움을 느꼈던지 그는 한차례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당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가족들과도 멀리할 정도였지만 장애로 인한 절망과 고통은 내게 정말 컸습니다.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기간에 대해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게 바람입니다."

오직 장애에 대한 거부감과 절망감으로 가족과도 멀리 떨어진 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제주도에서 홀로 생활한지도 벌써 3년째. 아직도 불현듯 자신에게 찾아온 장애를 모두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다시 세상에 나서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끊임없이 노력해야 변화와 발전이 있어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고 그 만큼 많아집니다."

오랫동안 떨어졌던 가족과 함께 할 준비를 하고 싶었음일까. 문득 가족이 그리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제2의 행복한 삶과 꿈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향해 내딛는 걸음이 무척 힘차 보인다.

"가족과 떨어져 제주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외롭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