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읽는 말씀을 깨닫게 하신 성령 - 행 8:30∼36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20. 10:11

사랑

 

사도 행전을 다른 말로 성령 행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사도 행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 즉 성령께서 자기를 계시하시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령 행전이라고 했을 때에 그 의미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계신가를 보여주고 있다.

 즉 그 사람에게 증거 되는 그분이 도대체 누구인가하는 문제이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나 빌립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증거 되고 있는 그분이 주인공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이고 그분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크신 은혜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1. 빌립을 보내신 성령님이시다 (30∼31)


하나님께서 빌립을 보내신다(30).
30절에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한다.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따라서 빌립은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빌립은 내시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즉 전도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또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제멋대로 전도하고 자신이 마치 전도의 비결을 아는 냥 자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다.

전도를 하게끔 하신 분이 누구신가를 우리는 기억하고 그분을 드러내는 것이 바른 전도자의 모습이다.

 내시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당시에 여행 중 말동무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내시도 그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읽은 말씀은 이사야서였다. 이것을 읽을 때에 빌립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내시에게 말을 한다.

 "당신이 읽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깨달아질 수 없다.

그러므로 신비의 책이 성경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은 머리가 좋고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면 누구나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빌립을 청하도록 하신다(31).
31절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내시는 빌립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

지도해 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도와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빌립을 보내 주셨고 그로 하여금 내시에게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게 하셨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신다 (32∼33)


성경 구절을 해석해 주도록 하신다(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라고 빌립은 말을 한다. 즉 내시가 읽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라는 말씀은 사 53:7∼8절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으로 가는 양처럼 끌려갔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이 모습을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예고된 바로 그 사건이었다.

 또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십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판의 자리에서 어린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으셨다.

바로 이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빌립은 내시에게 이사야의 말씀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디를 읽어보아도 메시아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소개한다(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한다. 죄가 없으신 가운데 공정하지 못한 재판의 자리에 계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오셨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 받으셨다.

그분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3.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34∼36)


선지자가 누구를 말하는가?(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라고 한다. 내시는 참으로 궁금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자기를 가르쳐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이를 가르쳐 하는 말인지 빌립에게 물어 보고 있다.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라고 내시가 질문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사람임에도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항상 옆에 끼고 살아가던 율법 학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될 수 있다.

 자의적인 해석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가르쳐 주게 하신다(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고 하십니다.

즉 빌립을 통하여 증거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위하여 보내신 것이다.
성경의 핵심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안된다.

 그분에게 우리들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위인전으로 보는 이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고, 예수님의 사도들이 그러하였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하였다.
눅 24:44절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세례를 받게 하셨다(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비록 이방인인 내시였으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전도란 인간의 힘의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통하여 내시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셨다.

 그로 인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증거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고 있다.

 그분에게만 생명과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