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복음 전도자의 삶-토마스선교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20. 10:01

나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곤고하고 병든 처참한 삶을 살다 성령의 사랑과 안식을 체험한 사람들은 타인들의 절망적인 인생도 자신과 같이 구원의 만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내 던지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나라의 복음전파에도 한 사람의 뜨거운 사랑과 생명을 주는 순교가 있었다. 1866년 9월5일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변 한사정 근처에서 좌초했는데 조선병사들은 침략선이라고 판단해서 배안으로 솔가지와 땔나무에 불을 붙여 배안으로 던졌고 불길은 화약으로 옮겨 붙으면서 불길에 휩싸였다.

선원들은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 들었고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들은 창과 곤봉으로 그들을 죽였다.

그러는 와 중에서 배위에서 백기를 들고 지저스 크라이스트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한권이라도 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전하고자 강쪽으로 힘을 다해 책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였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을 품 속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어 헤엄쳤다.

같이 헤엄쳐나온 선장 페이지와 두사람의 중국인 선원과 함께 포승에 묶인 채 평양거리를 지나 평양 감영으로 끌려가 평안도 감찰사 박규수에게서 조선에 침입한 이유에 대해 심문을 받았다.


토마스는  "우리가 조선에 온 목적은 첫째 예수교를 전파하려 함이요,

둘째는 백미 홍삼 소가죽 등 교역을 하려 함이요,

세째는 각처의  누각이나 정자를 구경하려 함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吾等來意  一則傳播聖敎也 二則文易白米紅參牛皮也 三則玩賞 各樓臺也 : 이흥권(李興權)이 쓴 패강록(浿江錄)은 토머스가 짧은 조선말로 이같이 대답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토마스의 답변은 아무 소용없이 대동강 하류 모래톱에서 처단됐다.

선원들의 처단하는 일을 지휘한 조선군의 박춘권이 토머스를 꿇어 앉힌 후 그의 목을 치려고 칼을 뽑아 들었을 때 토머스는 급히 자기 품에 지녔던 성경책을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하며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오! 하나님,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엉겁결에 성경책을 받아든 박춘권은 순간 마음이 이상한 감정으로 일렁거렸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 토마스의 2차 순교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순교의 씨앗은 열매를 맺게 된다.

토머스 목사의 목을 친 박춘권은 훗날 회개해 1899년 세례를 받고 평양 초대교인이 됐다.

평양은 그후 부흥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 한국의 예루살렘이 됐고 조선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그리고 오늘날 그 복음을 위한 생명의 희생은 오늘날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