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은 예수의 교역(ministry)을 통해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고 느끼며 확신하는 자들이 기록했다(koenig, 48). 그들은 현재 차고 넘치는 풍성함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으로 장차 상상을 초월한 풍성함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초대교회신자들과 신약성경 기자들이 풍성한 삶을 선물로 받았다고 확신하고있었다는 사실은 신약성경에 기술된 단어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 선물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헬라어로는 doma, dosis, dorea, dorema, doron, charis, charisma 등이며, '즐거워한다'는 단어 'chairo', '감사'를 의미하는 'eucharistia', 'eucharisteo'등이 있으며, 선물의 동사형인 'didomi'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을 주어로 100회 이상 나온다. 이러한 사실은 초대교회 교인들이 성삼위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선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도들과 만나는 기쁨, 주님을 만나는 기쁨 등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아 들였으며,(행 16:34, 벧전 1:8, 눅 24:41, 행 2:46 등) 음식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였고(행 27:35),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모든 것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받으면 거룩하여 진다고 믿어(딤전 4:4∼5), 피조된 자연계가 영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얼마동안 잃어버렸던 구약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으로 구약의 기자들과 신약기자들의 세계관의 일치를 고찰할 수 있다. chairo와 eucharistia와 관련해서 언급된 대부분의 은사들은 수평적이요, 대인관계의 charisma였다(구제헌금 : 고후 9:11이하; 복음전파 : 행 11:23;15:3; 빌 1:8; 지혜와 능력과 평화; 골 3:15∼17; 믿음과 사랑 : 롬 1:8; 살전 1:2 등 참조).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역(ministry)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롬 1:5; 엡 2:8; 요 1:14∼16; 행 20:32; 롬 3:24; 5:1이하; 고전 15:10; 고후 8:9 등) 그 은혜가 그들 속에 머물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으므로(롬 8:9이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연적이라고 경험하는 것들과 사건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와 역사를 식별할 수 있는 독특한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그들이 갖고 있는 은혜의 인식이, 과학적인 기준과 철학적인 기준에서 자연적인 것이라고 분류하는 모든 사건들과 교역들과 존재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를 경험하게 했고, 그것들을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했다(바울의 사도직 : 롬 1:5; 15:1이하; 고전 15:8∼11 등; 존재자체 : 고전 15:10; 특별한 은사들 : 롬 12:6이하; 고전 1:4∼7; 엡 4:7∼8; 11∼12; 벧전 4:10 등; 생명구조 : 행 27:24; 충성스러운 증거 : 막 13:11; 독신 : 고전 7:7; 선행 : 엡 2:8; 고후 9:8; 고난 : 고후 12:7; 구제헌금과 감사 : 롬 15:29).
영국의 성령운동의 기수 지(Donald Gee)는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분별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선에 까지 와 있다."라고 말한다. 지(Ge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은사들 속에서 귀중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지만 동사에 그 모든 은사들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적인 요소들도 함께 발견해 낼 수 있으므로 …… 우리는 초자연의 개념을 우리가 보통 자연이라고 부르는 영역에까지 확장하지 않을 수 없다(Gee, 1963, 34).
이러한 지(Gee)의 주장은 바울의 사상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연적 은사와 초자연적 은사들을 결코 분류해서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오히려 은사 자체를 구분하지 않고 그 은사들을 체험하는 주체를 두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즉 "육에 속한 사람" (psychikos)과 "신령한 자"(pneuma tikos)가 그것이다(고전 2:10∼16). 바울에게 있어 psychikos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미련하게" 보여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는 자들이다(고전 2:13∼14). 그들은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하여 세상을 보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자이다.
반면에 pneumatikos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알고 모든 것을 분별하는 자이다(고전 2:12, 15). 그러므로 "신령한 자"는 psychikos가 자연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들 속에서 성령의 임재와 역사들을 분별해 내며, 자연속에 초자연을 보며 초자연속에서 자연을 인식하는 자들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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