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와 진리

어린이 새신자반 만들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19. 16:41

어린이 새신자반 만들기
- 영원히 기억될 처음 사랑의 추억 만들기 -

  
◈ 신앙의 요람은 아름다운 처음 경험의 감격

새 신자는 영적인 유아기에 해당된다. 하나님과 처음 사랑을 경험한다. 이 때 형성된 믿음의 틀이 일생을 좌우하게 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도 있다. 새신자반은 신앙의 요람이다. 신앙의 박물관에 놓일 진열품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첫 교회방문", "새 신자 시절", "처음 감동", "처음 사랑"은 분명 영원한 신앙의 골동품이다. 최고의 가격이 붙여질 진품이다. 명품이다.

특히 어린이 새 신자는 모든 것이 새롭다. 황홀하다. 호기심이 충만해 있다. 설레임도 있다. 두려움도 있다. 예배 참석과 성경 공부가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기어다니는 아이가 직립인간이 되기 위해서 걸음마 연습을 한다. 지도자 어머니가 걸음마 연습을 시킨다. 혹독한 훈련이다. 새 신자도 그렇다. 신앙의 어머니가 필요하다. 홀로 서기로 신앙이 성장할 수 없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인도자가 있어야 한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예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참석은 고역이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과 감사를 모르는 참여는 구경일뿐이다. 믿음이 없는 구경은 지루한 시간 낭비이다. 지루함속에서 신앙의 감격을 기대할 수 없다. 따분한 마음의 밭에 말씀의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가고 싶은 시간이 될 수 없다. 머무르고 싶은 곳이 될 수 없다. 기다려지는 감격을 기대할 수 도 없다.

특히 자기 또래의 친구를 따라 교회에 온 어린이 새 신자가 받는 충격은 크다. 문화적인 충격도 있다. 이질적인 환경이 주는 충격도 있다. 정신적인 충격도 있다. 행해지는 순서가 마음에 와 감동의 진원지가 될 수 없다. 이 충격을 원활하게 해 줄 수 있는 길은 어린이 새신자반을 만드는 길이다. 또래 모임의 광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멋진 신앙의 골동품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들의 유형은 실로 다양하다. 부모가 믿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교회에 오는 경우도 있다. 어린 친구의 전도를 받아 나오는 경우도 있다. 전도지를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나와보는 경우도 있다. 먼저 믿은 가족의 권유로 오는 경우도 있다. 여자 친구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 주는 선물 때문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놀이터를 이용할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함께 놀아줄 친구 때문에 순전히 놀이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어린이들을 무조건 예배에 참석시켜서 말씀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무리수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가 된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의 뜻을 조금만 되새겨 보면 된다. 한 영혼을 위해서 교회가 해야할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신자는 엄청난 결단의 실행자이다. 박해를 무릅쓴 최후의 선택을 한 분들이다. 지금까지 그 영혼을 사로잡고 있던 원수마귀의 반격은 만만치 않다. 원수 마귀는 한 영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재 반격을 개시한다. 최신의 무기로 다시 공격해 온다. 일차 공격이 끝나면 다시 재차 공격을 한다. 예수님을 유혹한 사단의 전술전략을 보면 안다. 얼마나 다양한 전술전략을 신무기로 사용한다.

적을 알면 승리한다. 새신자반은 적을 알게 해 주는 곳이다. 적을 알 수 있는 신 병기가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지만, 바라지 않은 것들도 함께 보여 주는 힘이 있다. 믿음은 고통과 절망과 좌절과 낙심과 혼돈도 해결한다. 사랑과 용납과 용서와 화해의 힘도 제공한다. 영적, 육적, 감정적, 지적, 사회적인 필요도 충족시켜 준다. 전인적인 힘을 제공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적인 면만 관심을 가지시는 분은 아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삶의 영역에 개입하심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 좋은 교사 선정은 결실의 보증수표

새 신자반의 성패는 교사가 좌우한다. 좋은 교사 선정이 중요하다. 새 신자 교육을 맡을 교사는 신앙 전반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신앙의 모범을 사는 분이라야 한다. 이 되어야 한다. 자녀에 대한 깊은 이해도 갖추어야 한다. 자신들이 양육하고 있는 영적인 자녀를 알지 못하면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주신 특성과 성향에 맞추어 교육하라, 그리하면 저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 받은 교육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이다. 모든 교사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아이는 가르침을 받는 시기이다.

하나님께서 교사의 팔에 안겨준 새 신자는 다 다른 기질을 가진고 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다. 경험이 다르다. 환경의 영향도 다르다. 고정된 재능이 있다. 타고난 특성이 있다. 교사가 원하는대로 재창조될 성품이 아니다. 성경에 좋은 예가 나온다. 아담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가인과 아벨이다. 똑같은 부모밑에서 자랐다. 집도 같았다. 음식도 같았다. 그러나 둘의 성품은 달랐다. 밤과 낮이 다름 같았다. 압살롬과 솔로몬도 같은 맥락이다. 둘은 형제였다. 한 아버지 다윗의 왕궁에서 살았다. 환경도 같았다. 왕자 신분도 같았다. 그러나 압살롬은 반역자가 되었고, 솔로몬은 평화의 사도가 되었다,. 사상 초유의 지혜로운 정치가가 되었다.

새신자반의 승패는 먼저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속성이 있다. 좋은 방향의 성품과 나쁜 방향의 성품과 성향이 있다. 좋은 성향은 정서적인 안정이다. 기본인격 형성의 틀이 안정적이다. 흥미와 능력이 넘친다. 나쁜 성향은 마음 속에 항상 갈등을 품고 산다. 상처와 불안과 초조가 가득하다. 이기심으로 남과 어울림에 소극적이다.

천차만별의 성품인 것을 먼저 알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청해야 한다. 모두에게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갈 수 있는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로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 가면 교사는 교장을 두려워한다. 교장은 교육장을 두려워한다. 교육장은 학부모를 두려워한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오늘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배움에 입하게 하는 것이 교회이다. 영원한 두려움이다. 선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유익을 주는 두려움이다. 작은 조랑말이 엄청난 짐을 실은 마치를 끌 수 없다. 영적으로 조랑말과 같은 교사가 천하보다도 귀한 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갈 수 없다. 특히 새신자반의 교사는 먼저 영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해가 된다, 그런 교사는 없는 것만 못하게 된다.

하늘 아래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중에 최고의 지혜자였던 솔로몬이 답을 준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당부이다. 하나님의 교육방법에 대한 지침이다. 교육을 시킬 때는 부지런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조직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총경격을 감행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존계획과 지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생존지침은 간단하다.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교육을 위한 교제는 분명하다. 예수님이 받은 교육 방법이 그 예다. "주의 율법을 쫒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 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고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39∼49). 물론 별난 성품을 가진 새 신자도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별난 사람이 될 징조가 보인다. 그 별난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게 해보자. 그러면 방법이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