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은 결의이다. 하나되는 표시이다. 몸과 마음을 나누는 결합행위이다. 혈연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요식 행위이다. 도원결의도 있다. 결혼식 때 나누는 언약의 반지도 있다. 헤어지 아쉬운 정을 나누는 이별의 정표도 있다. 다시 만난 하나될 것을 바라는 소망이 담긴 언약이다. 언약은 둘 사람 중 하나가 변할 때 깨어진다. 결혼식 때 사용하는 금반지는 의미가 있다. 금이 변하지 않는 것 같이 당신과 나 사이에 변치 말자는 것이다. 만약에 변한다면 부부의 하나 됨은 파괴될 것이라는 엄숙한 서약이다. 이것이 언약이다. 구약 성경에서도 '언약'이 있다. 짐승을 두 쪽으로 갈라놓고 두 당사자가 그 사이를 지나간다. 두 당사자가 지나가면서 언약(계약)을 맺는다. 당신과 내가 맺은 언약을 누구든지 어길 경우 이 짐승이 잔인하게 찢길 것이라는 엄숙한 서약을 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도 '언약'을 맺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맺었다. 그 언약의 내용은 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시다. ②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③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이 임하고 만약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성경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었다. 이 언약이 신약으로 넘어와 새언약이 된다. 본문은 이 새언약에 관한 말씀이다.
1. 언약의 피로 미래를 약속하신 하나님
20절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이 말씀은 히브리서 기자 마지막 끝맺는 인사말 중에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중요한 진리이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정리하는 그런 말씀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되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할아버지들에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다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런 하나님은 다 우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데도 구원이 없는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구원은 없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잘못 믿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이 본문에 기록된다. 하나님을 믿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다. 그 외 하나님은 다 가짜요 우상이다. "언약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평강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이 된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평화가 임한다. 그러나 그 피를 거부하면 저주가 임한다.
2. 언약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
21절 상반절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고 한다. ①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우리들의 선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이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구원이 될 수도 있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행하는 착한 일일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이같은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 욕심만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기도이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였다. 우리들도 바로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신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기도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사단의 세력은 꼼짝하지 못할 것이다. 요일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마귀의 결박도 오직 예수 이름이지만 하나님께 기도도 오직 예수 이름이다. 요 16:24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했다. 예를 들어서 제가 교회 집사를 어떤 사람에게 보내어 무엇인가를 받아 오라고 한다. 심부름한 집사는 그 사람에게 가서 뭐라고 해야 하는가? "목사님이 보내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자신의 이름으로 가면 안되고 목사님의 이름으로 가듯이 우리가 우리 이름으로 가면 안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가면 하나님께 응답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이다.
3. 언약의 피로 하나된 성도
21절 하반절에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통해서 평강을 주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고 나서 "영광이 그에게 임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영광을 돌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인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영광도 받지 않는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모든 영광과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다.
언약의 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교회이며 성도들이다. 십자가 피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낄 수가 없다. 고전 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다. 그 예수의 자랑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고전 2:4∼5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다. 성도는 언약의 피로 하나된 공동체이다. 성령은 그 안에서 오늘도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는 일들마다 역사가 일어나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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