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관점에서 보는 동성애
성서적인 관점을 가지고 본다면 동성애는 한마디로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성서에서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분석적 언급은 거의 찿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율법이나 바울의 글 속에서는 동성애에 대하여 강한 정죄의 입장이 들어있다. 구약성서는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이 기사는 명확하고 또 직접적인 동성애에 대한 이해의 예로서는 충분치 않다. 이에 더하여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관계는 일종의
동성애가 인정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두사람 사이의 관계는 확실히 동성간의 친근함과 로멘스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이야기
역시 명확한 예라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밖에 구약성서에는 특히 레위기 18장 그리고 20장 두 곳에 동성애를 명백히 금하는
언급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동성애 한가지만을 비난하고 금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성적 불륜을 금하는 항목 중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특히 남성 동성애주의자의 경우를 예를 들면서 가증한 일, 죽임을 받아야 할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특히 바울의 글들 속에서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을 읽을 수 있다. 로마서 1장 26-27절에 동성애는 우상적인 것으로
규정하였고, 고린도 전서 6장 그리고 디모데 전서 1장 10절에서 바울은 동성간의 性관계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에서 지칭하는 동성애는 그 당시 이교적인 동성애 제의를 비난하는 맥락으로서 현대적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견해들도 있다. 예컨대 신약성서학자인 그릴리 (J. Harold Greelee)는 성서에서 동성애를 지시하는 희랍어
Arseenokoites 의 근원적 의미는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 동성애 뿐 아니라 결혼관계 이외의 모든 성관계에 대하여 금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많은 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비난이 그 당시 저자들의 사회적 관습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소위 동성애 경향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성연애의
경향에 따른 행위만을 기준삼아 동성애를 그릇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서의 동성애에 대한 비난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역시 그 당시의 제의적 성격과 도덕적 풍조에 깊이 연루된 표현들이라고 주장하게도 한다. 따라서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우리가 흑백 논리를 따라 좋고 나쁨에 대한 논의에 앞서 성서 저자들의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정확한 것이었으며 아직도 타당한 것일 수
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동성애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인 인간의 성적 본질과 결혼의 '출산적 차원'을 성취할 수
없다(창 1:26). 동성애는 타락의 결과요,인간 생활의 많은 무질서 가운데 하나이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최초의 언급은 창 19:1-11에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성관계를 의미한다. 창세기엔느 이 단어가 12번 나온다. 그 가운데 10번은 성관계를 의미한다. 소돔 사람들은
롯의 손님과 동성애적 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주석가들은 모두 이 본문에서 동성애 행위에 관한 언급을 발견한다(참고. 유다서
7절).
동성애는 모세의 율법에서 강하게 정죄받고 있다(레 18:22,20:13). 동성애에 대한 신약성경의
금지는 세 곳에서 발견된다(롬 1:26,고전 6:9,딤전 1:10). 성경은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모든 종류의 육욕을 정죄한다. 성경은
일관성있게 동성애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구약신학>에서 차일즈(B.S.Child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동성애의 행위에 대한 성경의 개방성-보증이 아니라면-을 찾으려는 최근의 몇몇 신학자들의 시도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구약의 이해와
엄청난 불일치를 보이는 것이다. 그 신학적 문제는 그러한 행위를 정죄하는 몇몇 본문들을 인용하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레 20:13)... 구약은
끊임없이 이성간의 도착적인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의도의 외곡을 증언한다(삿 20장;삼하 13장). 마찬가지로 구약은 동성애를 축복
바깥의 그늘로 떨어지는 창조의 왜곡으로 본다." 교회는 이 근본적 가르침을 양보할 수 없다!
동시에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를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는 죄된 태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명백하게
제시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은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하신다.
임상적 경험에 따르면,죄의식 뿐만 아니라
변화되어야겠다는 동기를 갖는 것은 치료의 성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1) 동성애에 대한 교회들의 입장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성서적 근거를 둔 부정적 이해가 주조를 이루어 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에 대한 개신교회의 입장은 대략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입장으로 징벌적 거절(rejecting-punitive position)의 태도가 있는 데,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성서의
구절들을 사회문화적 맥락을 따라 읽지 않고 문자적으로만 읽는 신학적 입장에 근거한 것이다. 개신교내 동성애에 대한 두번째 입장으로 우리는
비징벌적 거절의 태도를 들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동성애가 비자연적이며, 우상숭배적이고,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평가되지만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구별하고, 또한 동성애적 행위와 인격을 구별함으로 동성애주의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확보하는
입장이다. 즉 행위에 대하여서는 죄로 규정하지만 인격으로서의 동성애주의자들은 목회적 관점에서 영적인 배려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개신교내 세번째 입장은 적절한 수용(qualified acceptance)의 태도로서 동성애의 성향에 대한
문화비판적 수용 가능성을 전제한 입장이다. 즉 어린 유년기에 자리잡은 동성애적 성향을 교정하기 어렵다는 사회과학적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므로,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이성연애적 문화적 가치에 의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입장은 이성연애적 성향과
행위가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과 동일하게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합법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이성연애적 성향과 행위가 인간의 성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문화비판적 전제가 내재되어 있다.
비록 性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 할지라도 기독교적 입장들은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부여해 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까지 부인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1976년 발행한 바티칸의 性윤리에 대한 문서에서 지금까지 반대해오던 입장을 재확인 하면서, 다시한번 명확히 '동성애적 행위'만을
정죄하였다. 1974년 미 연합감리교회의 청소년 목회위원회는 결의안을 통해 '동성애라는 이유로 목회적 배려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하였고, 1976년판 교리장정에서 '동성애주의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신성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이에
부언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이 그들의 인권과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졌으며, 또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는 동성애를 저주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태도를 표명하였다. 미국 장로교의 경우 1977년 총회선언문에서
"우리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증언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목회를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길들을 찾아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독일 교회의 경우 1971년에 낸 백서에서 "독일기독교회는 동성애를 性의 잘못된
형태로 이해하는 동시에 동성애를 이상화하는 일을 거절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종전에 동성애에 대하여 유일한 반응으로 여기던 징벌적
판단과는 다른 판단이다. 性의 인격화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새로운 가능성들을 - 즉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한 목회적 배려와 정신치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들이 열렸다. 우리의 자녀들, 청소년들은 동성애를 위한 미혹, 선전, 그리고 주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서구 교회들의 입장들은 중요한 신학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교회의 목회적 배려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접근성(accessability
of the Grace of God to homosexuals)을 부인할 만한 신학적이며 인간학적 정당성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만일
신학적인 입장을 내세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접근성을 파기하거나 부인한다면, 그것은 복음에서 먼 신학적 오류요, 그릇된 주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구교회에서 동성애주의자들의 문제가 신앙적-사회적 문제로 인식될 만큼 커다란 문제가 되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실례라 할 것이다.
2)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역할
동성애에 관한 논의는 그 원인을 찾는 일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있었다. 혹자는 이 논
의 자체를
결론이 없는 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당
수의 동성애자들이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동성애를 생득적
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마틴 호프만(Marti
Hoffman)은 동성애에 관한 글에서 말하기를,성적 대상의 선택은
근본적으로 '학습된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주의자들은 동성애를
질병의 측면에
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이스(C.S.Lewis)는 이러한 입장에 반대하였다. 전통적으
로 기독교는 동성애를
'부자연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성경이 동성
애를 정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기독교는 동성애를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처럼,사회
타락의 징조로 여겼다.
로마교회의 밀헤이븐(John G.Milhaven)은 주벽이
도덕적으로 좋지 않고 비기독교적인 것과 같이,동성애도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동성애가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기능을
오용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사랑을 거부하고 온전한 인간생활을 못하게 하는데 있다." 이러한 관점은 동성애의 잘못을 범하는 사람을 '큰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동성애자들이 교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법에 의해서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버나드 램(Bernard L.Ramm)은,구속받은 자들의 코이노이아인 교회는 동성애자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The Right,The Good and
The
Happy,1971,p.111). 카알 하임(Karl Heim)은 말하기를, 개별적인 경우 우리들은 그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 사랑과
목회적 분별력으로 이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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