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

교회 안에 청년문화를 꽃 피우는 열 세가지 원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10. 13. 11:38

청년문화

 

  첫째, 성령의 부어주시는 역사를 먼저 지속적으로 온 교회가 구하고 그 성령의 새롭게 하는 바람에 힘입어야 한다.
  청년문화의 핵심은 생명이다. 외적 화려함과 자유분방함이 청년문화의 본질이 아니라 젊음이 본질이다. 그 젊음은 성령에 의하여 나이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이다.(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러므로 교회가 성령의 갱신케 하시는 역사를 구하고 체험하시는 바가 없다면 청년문화란 거품일 뿐이다.

 

  둘째, 담임 목사 자신이 청년문화를 풍겨야 한다.
  그래야 당회도 부정적 의미가 주는 늙음의 상징이 아니라  변화와 개혁과 갱신의 주체 세력으로 바뀐다. 그러려면 담임 목사는 그 연령에 상관없이 청년층과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꾸준히 배양해 가야하고 열린 사고와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의 자유와 뼈를 깎는 자기부인(self-denial)의 영성에서 나오는 변화를 향한 실험 정신을 함양해 가야한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선 독서, 대화, 견학 및 방문, 참여, 컨설팅, 시행착오 등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밟아야 한다.

 

  셋째, 교회 내의 구조 조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는 대학청년부가 유년부나 중고등부 등의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관장하는 교육목사의 지도 하에 대학부나 청년부를 두고 있다. 이로써 청년문화는 늘 아동문화나 청소년 문화를 수종 드는 문화로 전락되었고 장년문화에 종속되어 주눅이 든 '끼인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는 담임목사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되 고등부 이하의 주일학교를 지도하는 교육위원회와 대학 청년부를 지도하는 젊은이선교위원회로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교회에서 젊은이 파트를 책임 맡아 사역을 하고 있다. 담임목사님의 선견지명으로 10여 년 전에 이루어진 구조 조정의 결과 98년도에는 총 1000명 정도 출석하는 대학부 다섯 개와 역시 1000명 정도 출석하는 통합 청년부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 2000명의 조직화되어있는 대학생 및 청년들과 교회는 나오나 대학 청년부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또 다른 1000명 정도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전임 목회자 8명과 두 명의 교육 전도사들이 일하게 되었고, 이 모든 사역을 뒷받침해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젊은이선교정보연구센터'를 이루는 4명의 전임 사역자가 목회자들과 동역하며 일하게 되었다.

 

  넷째, 청년층을 겨냥한 주일 대예배를 만들라.
  최근 4-5년 동안 몇몇 교회에서 시도되어온 청년들의 주일 예배는 확실히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젊은이들을 좋은 의미에서 교회에 묶어두는 성과를 가져왔음이 명백 하에 입증되었다. 그러할진대 청년문화가 교회 안에 충만하게 나타나길 원하는 교회 지도부가 이 시도를 주저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다섯 째, 교회의 지도자와 청년 리더들이 함께 눈이 열리고 도전 받는 어느 정도 앞선 교회 대학 청년부의 방문과 견학 및 컨설팅 받는 기회를 가능한 한 자주 만들라.
  물론 앞섰다고 하는 교회들의 섬기는 자세도 필요하나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면 좀더 적극적으로 '거룩한' 로비나 피차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예쁘게 봐줄 정도의 '뇌물 공세'(예를 들면 귤 한 봉지 등)라도 해서 먼저 아쉬운 쪽이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여섯 째, 교회 안에 청년 사역 전문가를 키우거나 확보하지 않고는 청년문화는 표류하거나 잠깐 폈다가 시들어지는 조로 현상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은 교회의 지도부가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투자이다. 재정 탓만 하고 이것을 위한 믿음의 투자를 피한다면 그 교회는 경제논리에 밀려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등만 쳐다보는 '재앙'을 맞을 것이다.

 

  일곱 째, 젊은이들에 대한 감각을 갖추고 지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평신도 지도자들의 배출을 위해 힘쓰라.
  이것 역시 교회 지도부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교회 밖의 모임이나 단체들에 위탁교육을 시키든지 아니면 다른 교회의 대학 청년부에 인턴쉽을 거치게 하든지 하여서 미래의 청년문화를 준비해야 한다.

 

  여덟 째, 도전과 자극과 격려가 없는 교회 내의 젊은이들을 연합의 장으로 끌어내어 교회의 청년문화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자주 기회를 만들어 주라.
  만약 한국 땅에 있는 어느 교회의 젊은이들이 '학원복음화 협의회'나 '선교한국 98' 'VISION & MISSION 98' '에클레시아 98'등과 같은 연합 사역을 모르고 아예 관심도 없다면 청년문화를 그 교회 내에 창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네트워킹의 시대이다. 당신 교회의 젊은이들을 교회 안에 묶어두어 문화적 소경이 되게 하지 말라!

 

  아홉 째, 대학청년부 지도 교역자나 대학청년부 활성화에 관심 있는 목회자라면 오랫동안의 하나님의 인도 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학 청년부의 활성화를 위해 기도 및 연구하는 교역자들의 모임인 '대청마루'에 참가하는 일도 필수적인 일이다.
  이 모임은 바쁜 목회자들의 형편을 참작하여 한 달에 한번 모이되 일년에 10번만 모이는데 모이는 3시간 남짓의 시간 중 절반 정도는 청년 목회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중보 하는 일에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함께 교류 및 연구하는 일에 보내고 있다. 이 모임에는 대학 청년부의 경험과 노우하우가 많은 목회자들이 참여하며 아름다운 교제를 갖고 있다.

 

  열 번째, 교회 내에 청년문화의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커피숍 같은 친교실을 만들라.
  재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이 일도 마음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공간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긴 하나 좀더 창조적인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공간 활용에 너무 많은 모순을 안고 있기도 하다. 새 공간의 구입보다는 현재 활용 중인 교육 공간을 좀더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인테리어를 갖추는 배려도 필요한 것이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의 모임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고 교회 근처의 커피숍이나 노래방등을 배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젊은이들에게 자극만 주면 그들 스스로도 돈을 모아 멋진 커피하우스와 같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교회 내부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열 한 번째, 청년 대표들의 교회 운영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반적인 당회 자체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문제라면 차치하고라도 교회를 사랑하며 윗 권위에 순종도 잘하면서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갖고있는 믿음 좋은 청년들 소수를 목회의 논의 구조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 교회가 청년문화를 창달해 가는데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만한 일이다.

 

  열 두 번째, 문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도자 자신이 제자훈련 목회에 관심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배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도자가 소수의 잠재력 있는 젊은이들을 가지고 직접 사람을 세워가고 제자를 만들어 가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제자훈련 사역이 사실상 청년문화의 기본이며 중심이기 때문이다.

 

  열 세 번째, 젊은이에 대한 투자의 열매를 거두고 도움을 주기 위한 창조적인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젊은이에게 투자한다고 하여도 훈련을 받은 후 얼마 있어 떠나게 된다면  과연 교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하는 문제제기를 많이 받는다.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역교회이긴 하지만 불가피하게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에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후배들을 위해 약간의 헌금도 지속적으로 할 수도 있고 방문도 일년에 한 두번 할 수 있는 패라쳐치적 구조를 만든다면 이 문제의 해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평소 얼마나 그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았느냐의 문제이다. 진정 어느 공동체를 통해 구원을 알고 성장을 경험한 젊은이라면 공동체를 떠나도 그 공동체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와 재정의 후원에 대해서 마땅히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사랑의교회 부설기관인 '젊은이선교정보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고직한선교사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