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 한센(Bra-fly Hansen)은 영성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그는,
"영성이란 인간의 삶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확신에 따라서 사는 한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삶의 스타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정의는 영성에 있어서의 두 가지 면을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는데
첫째로, 영성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의 체계 즉 이해의 체계라는 것이다.
둘째로, 영성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체계로 끝나지 않고, 그에 따라 사는 삶의 구체적 표현의 체계 즉 실천적 체계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영성은 나름대로의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해에 따른 삶의 구체적 표현, 즉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인간만이 영성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만이 영성적 동물이다.
소나 말과 같은 동물들도 나름대로의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되면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면 먹이를 구하려는 구체적 행동을 할 것이다.
때가 되면 생식 욕구를 느끼고 그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게 된다.
벌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여도 벌이 삶의 가치와 목적에 대한 확신에 따라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능에 따라서 열심히 일할 뿐이다.
그것들의 삶의 패턴은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다만 충동과 감각에 따라서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에 따라서 삶을 추구하며, 스스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일에 자신의 열정을 쏟는다.
예술가는 미(美)에 지고(至高)의 가치를 두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자신을 헌신할 것이요,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가제시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투자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만이 영성적 동물이다.
브래들리 한센의 영성에 대한 정의는 삶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구체적 표현의 두 부분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데,
영성은 단순한 지식이나 이해가 아니요 삶의 본질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에 따라서 사는 삶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여 통합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분석해보면, 지적인 차원, 정서적 차원, 의지적 차원 등 세 가지의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차원적 요소들이 인간 속에서 통합되어지는 것을 가리켜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성이란 맹목적 행동주의도, 단순한 감정주의도 아니며, 또한 단순한 지식이나 도그마의 체계도 아닌 인간의 세 가지 차원 즉 지적 차원, 정서적 차원, 평가적 차원이 연속성 속에서 통합되어진 구체적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이해는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내적 수용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그것은 그에 따른 구체적, 의지적 작용 즉 행동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세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이미 그 영성은 통합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의 본질적 특징 중의 하나가 통합성이요, 통합성이 결여된 영성은 참다운 영성이 아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서, 기독교의 영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기독교의 지적인 면이나 의지적인 면을 무시한 채 오직 감정적인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이것을 영적 추구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영성에 대한 무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성을 위와 같이 이해할 때, 우리는 수많은 영성들을 열거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영성, 유대교 영성, 이슬람교 영성, 불교영성, 힌두교 영성과 같은 종교로 분류되는 영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 영성, 과학주의·영성, 세속주의 영성, 자연주의 영성과 같은 종교 이외의 범주에 속하는 영성들이 있다.
또한 위에 열거한 영성들도 무한히 세분화되어질 수 있는데, 그 예로 기독교 영성은 개신교와 천주교 영성으로 그리고 개신교 영성도 신앙의 전통에 따라 극히 세분화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브래들리 한센이 영성에 대한 가장 포괄적 이해를 제공해 주었다면 홈즈(U. T. Homes )는 영성의 범위를 초월적 실체와 연관시켜 정의함으로 영성의 범위를 전통적 범위로 한정시키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는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인간의 관계성 형성 능력(human capacity for relationship )이며, 그 관계의 대상은 감각현상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이 관계는 주체의 노력과는 별개의 것으로 확장된 또는 고양된 의식으로써 주체에 의해 인식되며, 역사적 상황 속에서 본질을 받고 세계 속에서 창조적 행위를 통하여 그 자신을 드러낸다."
김외식 교수는 홈즈의 정의를 받아들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영성이란 감각 현상을 초월하는 실재를 존재의 심층 수준에서 관계 맺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 혹은 수용성이며, 이 관계성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자각(self-awareness), 혹은 자기 지식(self-knowledge)을 얻게 하여 역사 안에서 창조적인 행위로 투신하게 하는 의식 (consciousness)과 에너지 일체를 말한다. ""홈즈의 영성에 대한 정의를 보면 첫째, 영성을 관계성으로 파악함으로써 감각 현상을 초월하는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성을 영성의 가장 중요한 본질로 규명하고 있다.
두 번째, 이러한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가져오게 하며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삶을 향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자신이 새롭게 맺은 대상들인 초월적 존재, 자기 자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표현을 말한다.
위의 정의들을 참고하여 영성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자 한다.
영성은 삶의 궁극적 실체와의 만남(encounter)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만남으로 이 만남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목적의식을 갖게 하며, 또한 삶에 대한 새로운 정서의 수용을 체험케 한다.
또한 영성은 새로운 이해와 내면의 수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그리하여 궁극적 실체, 자기 자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관계적 이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 삼자(三者)들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영성들의 특징은 각 영성이 이해하고 있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이해에 따라 결정되며 이러한 궁극적 실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그 영성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 예로, 불교 영성에서 이 세상은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며, 실체는 진리를 깨달은 마음뿐이다.
그러므로 불교 영성에서 이 세상에 대한 추구는 허상에 대한 추구일 뿐 가치가 없는 것으로 관조적, 도피주의적 특징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명상을 통한마음이라는 실체를 추구하는 유심론적(唯心論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서 실체는 하나님이며, 참 실체이신 하나님을 통하여 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과 피조물이 절대적 실체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창조되었으므로 가치가 있으며 그 가운데 인간은 절대적 실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인간의 삶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에 대한 추구는 가치 있는 일이나, 절대적 가치화 되어질 수는 없다. 피조물의 세계를 절대적 가치화 시키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악으로 간주되어진다.
한편, 세속적 인본주의 영성에서의 궁극적 실체는 인간 자체가 된다.
그들은 인간 이상의 궁극적 실체를 인정치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궁극적 실체는 인간 자체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가치란 결국 인간의 행복감으로 귀착되게 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삶에 있어서 궁극적 실체를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의 추구와 그 모습은 철저히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와 같은 이해 속에서 영성은 삶의 구체적 모습을 결정짓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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