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기쁨과 감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8. 30. 11:05

기쁨과 감사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과  "범사에  감사하라" 는  말씀사이에
이 두가지  명령이  같은  영역에  들어가는 것인지.  구분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같이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기쁜 일은   감사하기가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쁠수 없는 일에서도  감사는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영역에  들어가면서도  또  따로 일때가 많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죽음"은  분명히  기쁠 일이  아닙니다.
죽음앞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건전한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죽음앞에선   슬퍼해야 합니다.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할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죽음앞에서  더  뜨겁게  감사하게  됩니다.
저의   외할머니는 저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신 분이고 또 저에게 사역자의 길을 가도록 기도해 주셨던 분입니다.

외할머님이  돌아가셨을때  한 없이  슬펐지만.  또한 저는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왜냐고요?
죽음앞에서  영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팔십팔세의 년한은 축복받을 죽음이라고 주위에서 말하셨지만 저는 그보다는 죽음을  이긴  영생을  주신  은혜가   죽음앞에서는   너무도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뻐할수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습니다.
고난.  실패. 질병. 좌절. 분쟁. 빈곤. 고독. 이별, 이런 것들로  인해 기뻐할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  가운데서도  감사는  할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겸비하게하며.  주님을  바라보는자로  세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쉽게  이해 됩니다.

이제 남은  숙제는  "항상  기뻐하라" 는  말씀입니다.
"항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뻐할수 없는  일이  있는데도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수용해야 합니까.

제 나름대로  이해되기로는 예컨데. "죽음"앞에서 입니다.
죽음은  슬픔입니다.  그러나   큰 감사가  된다는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슬픔이  감사로    받아드려질때.   내 영혼의  밑바닥에서는  잔잔한  평강이  흐르는 것입니다. 이 평강은  "밝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어둠" 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이   기뻐하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저는 기쁨은   겉으로 들어나는   감각적인  표현보다도  이러한  영혼의  밝음이   기쁨의 진정한  표현으로 봅니다. 때문에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어도.  심령  깊은 곳에서는 평강이  강같이  흐를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쁨입니다.

그럼으로  기쁨은  진리안에서의  나의  영혼의  반응입니다.
진리안에서는  모든 어둠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진리를   깨닫는 자는  기쁨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붙잡고  사는 자는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기쁨과  감사의  차이는  표현의  차이 일뿐이라  할것입니다.
감사는  쉽게 표현 됩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쁨은  쉽게   표현할수  없을  상황이  많습니다.
초상집에서  웃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나   기막힌  슬픔가운데서도  우리 영혼 속에는  빛이 있고. 평강이 있느니  그것이  기쁨의  표현입니다.

감사는  항상  어느  상황에서도  표현하기가  쉽지만. 기쁨만은  그  표현이  절제되어야  합니다. 이런  차이 밖에  없다고 봅니다.
결국  기쁨과  감사는  항상. 어디서나   같이 갑니다. 다만  표현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뿐입니다.


오늘 하루 진정으로 감사와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뻐함으로 감사함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