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3:15에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그들의 신앙을 '미지근한 물'로 표현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표현이었다.
라오디게아에는 수도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가 몇 마일 북쪽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물이 라오디게아 지역에 공급될 때쯤에는 아주 미지근해져서 맛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신앙이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겠다" 라고 하셨다(cf : 물은 섭씨 4도에서 가장 맛이 있다고 함 - 미지근할 때 가장 맛이 없음).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너희들의 모습을 보니 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희를 토해내겠다"는 것이다.
뜨겁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차갑기라도 하면, 다시 말하면 아예 신앙이 없다면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있겠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이기 때문에 이 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교회의 신앙의 특색은 미지근한 것이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과는 관계가 없는 신앙이다.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을 보면 외형적이고 물량적인 잣대로 성장을 평가한다.
그리고 이만하면 우리 교회는 성장했고, 이만큼 성경을 공부했으니 '나는 이제 됐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으니 잘 믿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으니 믿음도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큰 교회에 다니면 큰 믿음을 소유한 것으로 생각한다.
훌륭한 설교를 듣고 있으면 자신이 곧 좋은 신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말씀을 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에서는 신자행세를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신앙이 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믿음도 있다.
신앙으로 인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믿음도 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처럼 착각에 빠져 허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됐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직 아니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주님은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나 혼자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데 나 혼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살펴봄으로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진단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지 않으면 치료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23: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갈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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