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760년 경 하나님은 유대 남쪽 "드고아"라는 곳에서 뽕나무를 가꾸고 양을 치고 있는 아모스를 불렀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불러 그로 하여금 부패하고 타락한 그 나라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라고 하였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부름에 선지자가 되었다.
또한 하나님이 외치라는 메시지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양분되었다.
부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에 여념이 없었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전전긍긍하였다.
사회는 점점 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되어 갔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음주와 성적 타락은 극에 달하였다.
도덕과 윤리의 심장부인 종교는 위선과 외식으로 가득 찼었고 우상숭배는 전국에 만연되었다.
이를 본 아모스는 공법과 정의를 외쳤다.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 지로다"
그러나 집권자나 백성들은 아모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망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느 나라든 공법이 지켜지지 아니하고 정의가 서지 못하면 그 나라는 조만간에 망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항상 있다.
이 땅에 공법과 정의가 물과 같이 골고루, 하수 같이 도도히 흘러야 하는 것이다. 정의의 물결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정권과 물질에 눈이 어둔 자들이 정의의 물결을 막으려다가 망한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더욱 종교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소망이 없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뤄지길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외형적인 경건만이 남아있다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 교회와 무엇이 다를수
있겠는가...!
때로는 형식적인 예배가 엄숙하고 경건스러워 보일 때가 있으며 볼 수록 휼륭하게 보일 수가 있다.
예배의 풍성과 그 외향이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보이며 아름답게도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예배는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떠났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진실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요 통회하는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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