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한국교회의 부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선교사들의 눈부신 활동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1) 그들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 가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둡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그들은 많이 심었기에 많은 영적 수확을 얻었습니다.
2) 성경을 보급하며 가르치기에 힘을 다했습니다. 1890년 1년동안 한국에 보급한 성경의 양이 중국에서 50년 동안 보급했던 성경의 양과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1886년까지 15,690권이 보급되었고 1887년 한해에 6,600권, 1892년까지 578,000권이 보급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성경을 열심히 배우며 가르쳤기에 부흥했습니다. 지금도 서점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 (Best Seller)이 성경입니다.
3) 선교사들은 청교도적인 생활로 성도들과 백성들에게 감화를 주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전도할 때 교회에 모이던 사람들은 전부 술, 담배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아편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옆자리에 담뱃대를 세워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 오면서 술 한잔하고 예배를 마치고 가면서 한잔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탄절에는 막걸리파티를 벌였습니다. 일국의 왕자가 오신 날도 잔치를 벌이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날인데 어떻게 잔치를 하지 않을 수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모두 퓨리탄(Puritan;청교도)의 후예였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복을 받으려면 술, 담배를 금해야 한다고 그들은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초를 금하게 됨으로 건강하게 되었고 가정이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가정이 불신자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이 경건하게 되었을 때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4) 선교사들은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의료선교사로 왔던 알렌은 갑신정변때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하여 완치시켰습니다. 이로 인하여 궁중에 신임을 얻어 서울에 제중원이라는 병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평양, 대구, 부산, 원산, 개성에도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의료기관 뿐 아니라 교육기관도 설립하였습니다. 서울에는 배제학교, 이화학교, 경신학교, 정신학교, 연의학교, 배화학교를 세웠고 평양에는 숭실학교, 숭의학교를 개성에는 호수돈과 한영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선기관도 세워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5)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받아들여서 한국인 목사를 양성했습니다. 1901년 평앙장로회신학교를 사무엘 마펫이 설립하여 1907년 9월 17일에 7인의 목사를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서경조, 길선주, 양전백, 한석진, 반기창, 송인서, 이기풍 목사입니다. 길선주 목사는 3.1독립운동 33인 중의 한 명이었으며 부흥운동의 주역이었습니다. 이기풍은 깡패 두목이었으나 마포삼열 목사님에게 전도받아 목사가 되고 나서 제주도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인 목사는 계속해서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는 전도와 개척교회에 크게 공로가 있는 최봉석(권능)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는 교회를 70개 이상 개척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 목사님 같은 분도 계십니다. 그는 부흥회중에 많은 이적과 기적을 나타내었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 부흥의 또 다른 원동력은 성도들의 헌신적인 활동이었습니다.
1) 한국의 초대교회는 성경 읽기에 힘썼습니다. 성경공부에 힘썼습니다. 선교사가 오기 전에 한국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서상륜이, 일본에서는 이수정이 이 일을 감당했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암송했습니다. 성도들은 말씀 공부하는 열심이 강했습니다. 1902년 평양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을 때 평안남북도, 황해도 장연, 서울, 전라도 무안, 목포에서도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국교회는 말씀으로 세워졌습니다.
2) 한국의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말씀같이 한국의 초대교회도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주일날 장날이 되면 평양이나 선천지방에서는 장이 서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처음 시작하신 분인데 새벽기도를 통하여 성도들은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가 성경에는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 시작하신 분은 길목사님이셨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너무 귀합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3) 한국교회는 헌금을 열심히 했습니다.
요한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의 초대교인들은
①성전이 저당잡힌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 집을 저당잡혔습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을 생각했습니다.
②쌀을 팔아서 조를 사먹고 남은 돈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성이 지극하였습니다.
③여자들은 결혼반지를 팔아서 헌금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헌금했습니다.
④집을 팔아서 하나님께 바쳐도 부족을 느끼고 밭을 가는 소를 팔아서 바쳤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소 대신에 밭을 갈았습니다.
⑤돈이 없는 사람은 예배당을 짓는데 몸을 바쳐서 일을 하므로 시간적인 연보를 했습니다.
미국교회 교인이 1원을 바칠 때 한국 교회 교인들은 10원 6전을 헌금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가 많았기에 부흥하였습니다. 구원받는 자가 많았습니다. 이 정성으로 2000년의 기독교 역사상 제일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한국교회가 된 것입니다.
4) 초대 한국교회는 주의 종 목사를 존경하였습니다. 오산학교 교장 조만식 장로님은 그 학교 출신 주기철 학생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을 때 그가 봉사하는 산정현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하였습니다. 조장로님은 주기철 목사님을 주의 종으로 알고 출입할 때마다 보고를 하였습니다. 같이 심방할 때는 목사님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기름 부은 종들을 영접했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했고 평강 속에 왜정 36년간의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승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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