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기도에 힘쓰라-막 9:26-29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9. 10:38

금붕어

 

이 설교는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김병국교수님의 설교문입니다.

 

 

1. 서론
우리의 인생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나타납니다.

 

2. 본론
(1) 나를 알게 된다.
우리는 우선 기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죄인인 줄 알아야 하나님의 손에 바로 들려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베드로를 부르실 때 우선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이 무익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눅 5: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없을 때는 자신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모를 때,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을 때는 나 자신이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가까이 있게 되면 자신이 죄인임이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후에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도 그 깨달음이 없으신 분이 있습니까?
기도하셔야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해 달라고 우선 그 기도제목 가지고 밤을 새워야 합니다.
그 깨달음 없이 절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이 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는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 145:18은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할 때 다시 말해서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가까이 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오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평생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될 지 모릅니다.
큰 환난을 겪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면 재물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명예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재물 바라보고, 명예 바라보고 주의 일 했던 자들은 다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누구만 끝까지 남아서 주의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해하는 것을 배웠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았던 자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믿음을 지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자들은 중간에 탈락되어 버릴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창 15:1에서 하나님께서는 "...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 18:1,2에서 모세는,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
2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주의 종들의 기업이시니 주의 종들은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도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예, 물론 그런 해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이 일차적으로 말하려는 내용은 그게 아닙니다.
이 구절들의 뜻은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타락합니까?
주의 종들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주의 종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그 기쁨을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적인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쓰레기와 같은 부수적인 만족을 얻어 누리기 위해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환난의 때가 오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 때만을 위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평상시에도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전쟁에서,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때는 패배했을 때가 아니라 내가 아예 싸울 의욕을 잃어 버렸을 때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솔직히 그런 때를 한두 번은 경험을 합니다.

삶의 의욕과 소망을 모두 잃고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그 때도 이론적으로는 내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일어서지 못합니다.
아무 의욕이 없습니다.

세월이 계속 흘러가지만 나는 멍하니 그 시간의 흐름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런 세월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그 때의 비참함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는 세상적인 축복이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삶 자체에, 존재함 자체에 흥미가 없는데 축복이 무슨 흥밋거리가 된단 입니까?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인격자이신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할 줄 아는 자들, 그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런데 그 교제는 꾸준한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훈련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서 이왕 구할 거면 가장 큰 것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면 주십니다.

(3) 능력을 받게 된다.
기도하는 자는 또한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 2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종은 기도해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고전 4:19,20에서 사도 바울은, "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세상이,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똑똑한 목회자, 말 잘하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 있는 목회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서 신유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방언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귀신 쫓아내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설교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가르침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다스림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를 위해 예비해 두신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옷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눅 11:13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구하면 누구에게나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또 막 11:24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무엇이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도로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이 장애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대상 29:11).

어떤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것이 장애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약 1:5,6은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태생이 안 좋기 때문에, 나를 키운 부모가 신통치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사사 입다를 보십시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시니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습니다.
문제가 있거든 전심으로 기도에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 의지할 생각, 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람 의지하면 자신만 비참해질 뿐입니다.

선배 목사님들이 늘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사람들은 사람을 의지했다가, 일도 해결 못 받고, 비참하게 굴욕을 당하는 상처를 몇 번 경험하게 된 다음에야 하나님께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 21:1은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 같아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시기는 것은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물론 윗사람에 대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비굴해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괜히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신학생 시절은 어디를 가나 약자인 시절입니다.
돈, 권세, 명예,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힘있는 목사님에게, 돈 많은 장로님, 권사님에게 조금은 아부를 해서라도 인생을 편하게 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 118:8,9은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응답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결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죄인임을 더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나의 상급이 되심을 즐거워할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큰 능력을 받아서 우리의 평생을 통해 마귀들의 권세를 사정없이 짓밟고 부수는 위대한 용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