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하나님의 백성 - 호 1:10∼11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14. 11:07

나 이뻐

 

호세아 1장부터 3장까지는 심판과 구원이 반복된다.
이 부분의 중심 내용은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부인의 방종으로 인한 "심적 고통과 다시금 회복되어지는 관계의 즐거움"이다.
1: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성실을 깨우치기 위해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할 것을 명하셨다.
1:3∼9에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상징하는 세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은 이제까지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회초리를 잠시 멈추시고,
놀랄만큼 변화된 모습으로,
징벌의 결과가 언젠가는 바뀔 것임을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한마디로 지금까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나왔는데 비해, 여기서는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와 버림받은 백성간의 결렬은 끝나고, 이제 그들을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나라였다.
왕하 15:19 말씀을 근거로 추측할 때, 당시에 세금을 낼 수 있는 국민의 수는 겨우 6만에 불과했다.
군인의 숫자도 1만에 지나지 않았다.
보잘 것 없는 약소국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유되어 약속 되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절망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암미"(나의 백성)를 선언하시고, 새 시대를 예고하신 것이다.

먼저 "새 이스라엘의 수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 수가 측량도 할 수 없고,
셀 수도 없다고 하였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였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몇 만명에 불과했고,
군인도 만명 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유일한 희망인 하나님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귀중한 약속이 주어져 있었다.
즉,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약속으로 "너희 자손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이다(창 12:3).

새 시대가 아니고서는 패망할 이스라엘의 숫자가 많아질 수 없다.
바닷가의 모래같이 된다는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는 이삭을 제물로 바친 후 확언 계약 때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소망이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성장의 소망이 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족속들이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하였는데,
바로 우리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녀이며,
우리에게 그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셀 수 없이 많은 무리 중에 참여시키셨다.
복음은 사마리아를 지나고 로마를 통과하여 전세계로 전파되어졌다.
예수의 주변에 떼를 지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던 것처럼 잠자는 심령을 깨워 큰 무리로 성장시키신다.
12명의 제자에 의하여 시작된 기독교는 전세계의 1/3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다.
100여년 역사의 한국도 일천만의 성도가 생겼다.
우리 교회도 성장할 것이고, 개개인 모두도 성장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또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운다고 성경은 말한다.
"암미"의 내용은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시작하시고,
운용하시며,
마감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로-암미"로 선언당했으나,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새 시대의 도래로 그들과 이들이 "암미"로 선언당한다.
이는 곧, 악한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요,
먼 훗날 이방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암미"는 여호와께서 새 시대와 자기 방법으로 이룩하신 빛나는 구원이시며, 선언이다.
비록 질병이나 흉년이나 전쟁으로 때리시기는 하겠지만, 나라는 망하지 않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매는 때려도 버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이 하나님도 모르고, 제 멋대로 살던 죄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 9:24∼25)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강도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계모와 살고 있는 사람을 구원해 주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같은 성경의 말씀을 반드시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외우고 있어야 한다.
특히 "나는 죄가 많아서 천국에 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외우고 있어야 한다.
"나는 죄가 많아서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생각은 마귀가 준 생각이다
"나는 죄가 아무리 많아도 천국에 충분히 간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가 되고, 승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한 지도자를 세운다"
"포로된 땅에서 나온다"
이 말씀은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원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열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싸움은 승리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대와 이스라엘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스스로 통치자 되려는 욕망 때문에 분열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주님이심을 증명해 주셨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십자가 앞에 집합되었다.
방언의 역사는 흩어진 언어를 하나로 모아주었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모국어로 복음을 들었다.
우리는 하나이다.
하나님은 교회의 분열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는 몇 파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모두가 하나라고 하였다.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교파가 난립되어 있지만 천국은 교파가 없다.
성도는 모두가 주 안에서 하나이다.
주 안에서는 높음이나 낮음이나 구분이 없다.

한편 "땅에서 올라올 것이라"는 말씀은 매우 비밀스러운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언약이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계속하여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신다.
그것이 곧 '복음'이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사망에 포로되었던 우리를 구출하셨다.
주님은 이방 세계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셨다.
유대인들에게 배척받던 세리, 창녀, 불구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렀다.
믿음을 고백한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셨다.
내가 미워하고 무시하는 나의 이웃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우리와 원수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아 주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승리이다.
십자가의 승리는 우리를 자녀로 입양시키셨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간직하고 있습니까?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믿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성장한다.
우리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미래가 있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손해보고,
바보가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신다.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찢으셨으나 다시 회복하시는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