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모든 피조물을 회복시킬 좋은 소식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6. 3. 7. 17:15

 

 
사회복지가 아무리 발달되어 못 가진 자들을 돕는다 해도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는 없고, 인간의 법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의인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의 지식은 어둡고 불확실한 것이며 철학도 천문학도 불투명하고, 과학도 기하학도 완전하지 못하다.
이 세상의 어떠한 진보적인 정치 이념도,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 만큼의 신기하고 위대한 사상도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는 믿음이 생기기 이전에 모든 인간은 율법과 죄와 저주 아래서 매이고 감금되어 있었음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흑암과 사단과 죄 아래 갇혀있는 자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이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는다는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일 뿐이다.

어두운 감방 속에 갇혀있는 사형수에게는 감옥 밖의 자기 집도, 아내도, 자식도, 돈도 즐거움이 될 수 없다.

사형수에게 기쁜 소식은 오직 사형을 면제받는다는 소식이듯이, 인생 최고의 기쁜 소식은 근본적인 저주를 면제받고 운명과 사주팔자에서 해방 받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좋은 소식일 뿐이다.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로 되어 있다.
이 말씀에서 "없느니라"라는 뜻을 지닌 단어는 (우데이스)라는 절대 부정어가 사용되어 있다.
(우데이스)라는 절대 부정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동, 서, 사방 어디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절대로 없고, 운명과 사주팔자에서 해방되는 길이 절대로 없음을 강조하는 단어다.

이처럼 죄와 저주와 사단과 운명에 매인 자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알리는 최고의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 하며 "좋은"이라는 뜻을 지닌 (유)와 "소식"이라는 뜻을 지닌 (앙겔리온)의 합성어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은 그야말로 좋은 소식이요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땅 끝까지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증인이 될 것을 명하셨고 마28:19에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막16:15에서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

막16:15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본문을 원어로 보면 더욱더 분명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막16:15의 원어 본문은 로 나타나 있다. (케륔사테)는 제1과거 능동 명령 복수 2인칭으로 이유나 핑계도 대지 말고, 논리·조건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전파하라는 명령이며 (토)는 중성 정관사이며, (유앙겔리온)은 "복음"이라는 중성명사이다.

(파세)는 "모든, 전체"라는 뜻을 지닌 (파스)의 여성명사 단수여격이며 (테)는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예정하신 것을 나타내는 여성 정관사이며 (크티세이)는 "창조물, 피조물"을 뜻하는 제3변화명사 (크티시스)의 여성 단수 여격 명사로써 사람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의 회복까지를 의미하고 있다.

마28:19의 "모든 족속"이라는 부분은 로써 "민족, 백성, 이방인"을 뜻하는 의 복수 목적격인 가 사용되어 이방민족과 유대민족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막16:15에 나타난 (크티세이)는 동사가 되면 (크티조)가 되어 "창조하다"란 뜻을 지니고 있기에 (크티세이)는 단순히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도록 돕는 정도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결국 (크티세이)는 아담의 범죄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던 창3:18의 사건으로부터 모든 피조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할 것을 명하신 것이고 땅까지 저주받았던 근본적인 저주로부터 전 영계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롬8:19의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에서도 (크티시스)의 소유격인 (크티세오스)가 사용됨으로써 피조물마저도 흑암세력이 무너지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복을 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이라 했듯이 복음은 살아 있으며 생명력을 지녔기에 생동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복음은 근본적으로 지옥의 대열로부터 이탈하여 천국을 향한 대열에 서도록 한 것이지만 복음은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필요한 일상적인 것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혼구원에 관심 있는 자와 오직 전도·선교하려고 마음에 작정한 자에게 은사도 물질도 주시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어나 빛을 발하여 사실적인 전도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세상적인 학문을 하는 자들은 가르치는 것만 잘 가르치면 그 실력을 보고 사람이 따르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성공된 삶이 동반 될 때 더 효과적인 증인이 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은 꺼져 가는 등불처럼, 상한 갈대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복음 받은 우리에게 남은 길이 있다면 요셉처럼, 다윗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오직 이 기쁜 소식을 어둠 속에 갇힌 자들에게 전하는 일인 것이다.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한 축복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복음 때문에 이제는 증거 있는 삶으로 성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복음 때문에 살아가는 자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현장에서 전도하는 제자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빛을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모든 저주는 무너지고 사단과 귀신들의 세력은 꺾일 것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사실적인 역사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모든 피조계의 회복과 함께 그 따르는 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게 증거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