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다(마 6:34). 이 말씀은 예수님도 우리들이 당한 고난과 괴로움을 인정하셨다는 말씀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환난과 고난을 당한다. 고난과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나만 그런 고난을 당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불 시험이란 금속을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제련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신앙을 연단 하기 위한 시련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런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연단 시킨다. 많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성장하도록 하신다. 우리들이 당한 환난과 시련은 더러운 운명과 팔자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그런 환난을 당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그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을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자.
1. 성도들을 시련 하려는 것이다(12).
본문 1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한다. 성도들에게 당한 불 시험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다. 그런 불 시험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을 시련하고 연단 시키는 것이다. 본문은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베드로 사도는 불 시험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너무나도 친근하게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므로써 아주 친밀한 관계임을 암시해 준다. 우리들을 연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때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나님 앞에 무슨 큰 죄를 범했기에 저런 벌을 받나"라고 입방아질을 한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이상한 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벧전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임한 시련은 믿음이 얼마나 순수한 것인지를 시험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마치 금이 불에 제련되어 순금이 되듯이 우리들에게 임한 시련과 환난도 바로 그런 순금의 신앙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불 시험을 당한 자들은 그런 불 시험을 당한 자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위로로 복음을 증거 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들이 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많은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자.
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다(13).
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우리들에게 임한 시련과 환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들더러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한다. "그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라고 한다. 이 때가 어느 때인가? 예수님께서 영광의 모습으로 재림하실 때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영광이겠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저주의 형벌로 최후 심판을 받는 때이다. 우리들은 그 날을 기억해야 한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림하실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 제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재편되는 역사가 임할 것이다. 그런 영광의 때를 기억한다면 지금 우리들이 받은 환난과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환난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연단 되고 훈련된 좋은 군사로 만들어 줄 것이다. 훈련소는 호텔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악조건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우리들의 인생이 마치 훈련소와 같은 곳이다. 저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거쳐야 하는 훈련소이다. 그렇다면 좀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참고 견디자. 고후 1:5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이 지나면 새벽의 밝은 빛이 임할 것이다.
3. 그리스도 이름으로 당하는 시련(고난)은 복이다(14).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욕을 당할 때 오히려 복 있는 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영원한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위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들과 늘 함께 해 주신다.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욕을 당해도 우리들은 복받은 자이다. 마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다.
요 15:20에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고 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핍박과 시련은 오히려 복이다. 롬 8:18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하는 시련과 고난은 장차 우리들에게 나타날 영광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s야고보서 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다. 우리들은 욥의 인내를 잘 알고 있다. 욥이 당한 환난을 생각해 보았는가? 욥보다 더한 고난을 당한자가 있는가? 없다. 욥이 그런 고난도 믿음으로 참고 인내했다면 욥보다 더 적은 고난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들 역시 인내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욥이 갑절의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도 그런 복을 받을 것이다.
결론
롬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은 성도라면 그 어떤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천국 백성들의 기본 자세이다. 고난을 피해 가는 약한 자가 아니라 그런 고난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일하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더욱 우리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다. 사도행전 14:22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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