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신비한 무기 - 찬송의 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0. 16:14

노래는 감정의 한 표현 방법이다. 기쁠 때 노래를 부른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표시할 때도 노래를 부른다.

우리 민족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노래를 불렀던 것도 다 여기에 연유한다.

 

찬송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최상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일이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찬송뿐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이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존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절로 찬송이 나온다.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찬송이 중단 될 때는 기쁨이 멈출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명하셨다(레 20:13, 시 66:2, 출 15:21, 묵 19:5).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찬송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재를 느끼기 때문에 큰 위력을 가진다.

인간이 그토록 갈망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하는 것이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히브리 사람들의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년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했다.

 

 예배에 사용되는 모든 것은 임마누엘의 축복이 따른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설교할 때, 헌금할 때, 전도할 때 모두가 하나님께 임재하시는 조건가운데 들어 있다.

 기독교인의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고 가장 무서운 실패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찬송의 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이 되시니"의 찬송을 지어 부르므로 그 자신이 그 찬송을 부르고 들을 때에 힘을 얻었다. 찬송은 약한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로마인은 음악을 전쟁에 많이 이용한 민족이다. 그래서 그들의 악기는 용감하고 활발한 음악을 하는 취주악기가 상당히 발달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국가이고 음악을 전쟁에 사용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 중공군들은 전쟁을 할 때에 피리불고 징을 치며 전투하는 것은 약하여진 병사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고 격동시켜서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싸우도록 한 실례이다.

뿐만 아니라 찬송은 원수 마귀를 쫒는 힘을 주기도 한다.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니라고 했다. 악신은 하나님의 신이 아니계신 곳에만 있는 영이므로 찬송하는 성도에게는 악신이 접근할 수가 없다.
찬송을 힘있게 부르는 교회를 가보면 마귀의 시험이 없다. 그러나 찬송에 힘을 잃은 교회는 가보면, 마귀의 놀이터와 같다. 서로 흉보고, 비방하고, 서로 욕들을 하면서 교회가 말할 수 없도록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힘있는 찬송을 부리기 위해서는 첫째, 찬송가 가사의 뜻을 확실히 알고 믿고 불러야 한다. 찬송가 가사는 곡조있는 전도요, 또한 곡조있는 기도요, 그리고 곡조있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둘째, 곡대로 불러야 한다. 찬송가는 가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곡도 가사와 똑 같이 중요하다.

 

 강한 자를 더욱 강하게 하는 찬송의 힘
"다윗이 수금을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하신 것은 마음에 안정을 얻고 더욱 강건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욥은 엄청난 부자였으나 고난이 닦쳤을 때 많은 시련을 겪었다. 가산이 다 없어졌다. 자녀들이 재난을 당했다. 몸이 병들었다. 모든 가족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친구들도 멀리 했다. 바로 그 때 욥의 마음에 남아있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강건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찬송이었다.
찬송하는 곳에는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한 곳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깃든다. 찬송하는 곳에는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찬송을 부를 때 우리의 감정은 그 찬송의 내용대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느끼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빌 1:11)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

찬송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지금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 그리고 장차 하실 일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찬양할 때 우리도 다윗처럼 될 수 있다. 무의식 중에라도 찬송하는 자가 강한 힘을 가진자가 된다.
미국에서 우유를 생산할 때, 소를 푸른 목장에 내몰고는 종일 흥겨운 음악을 들려준다고 한다. 상쾌한 환경속에서 온종일 기분좋게 지낸 그 소의 젖이 가장 우수한 우유가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화를 낸 상태에서 어린이들에게 젖을 먹일 때는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독소를 먹이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

 

 하늘의 응답을 운반해 주는 찬송의 힘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간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을 경험한다. 의의 열매가 가득해 진다. 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해 진다. 원하는 기도가 응담된다. 기적이 일어난다. 결국 찬송은 하나님의 응답을 운반해 오는 배달부가 되는 것이다.
적과 대진하였을 때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의 신이 임재한다(민 10:9).

우리의 무의식까지 찬송의 마음이 채워질 때 우리 안에 하늘 능력이 샘솟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도 함께 얻게 된다. 그렇게 믿을 때 그 믿음에 해당되는 능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복의 물이 흘러 넘치는 계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사막에 강이 만들어진다. 높은 산이 평지가 된다. 노를 수 없는 험곡도 넝히 정복될 수 있는 봉우리로 변한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찬양이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토해낼 수 있게 만들었다

'믿음 소망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방에 대하여  (0) 2004.04.21
기도에 대한 깨달음  (0) 2004.04.21
숨겨진 상처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0) 2004.04.20
하나님이 주신 직분  (0) 2004.04.20
음악의 기능  (0) 200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