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가 되려면 신(神)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때 신은 귀신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귀신은 사탄의 졸개입니다. 사탄이 거느리는 부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귀신으로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조상 귀신이 후손들에게 나타나고 제사를 드리는 현장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교회 어떤 집사는 환상으로 조상 귀신을 보았다는 말까지 합니다. 떠돌아다니는 조상 귀신을 위로하고 굿을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이와 같이 온갖 무속 신앙이 조상 대대로 우리들에게 전해 내려 왔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도 이와 같은 무속 신앙을 버리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지옥 아니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의 졸개인 귀신이 조상 귀신으로 가장하여 후손들에게 나타나 장난을 칩니다. 사탄은 이미 인간이 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같은 약점을 이용해서 장난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같은 장난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악한 신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음악이 그 악한 귀신을 좇아 낸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악한 귀신을 좇아 내는 음악은 어떤 음악이겠습니까? 이같은 말씀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합니다. 사무엘상 15:11에 기록됩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의 출발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기 위한 동기였다는 사실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런 이유인지 사울은 의도했던 대로 하나님을 외면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범죄는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합니다. 이 후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후회라는 말은 사울을 심판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후회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첫째, 하나님을 좇지 아니하고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11절). 둘째,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12절). 삼상 15:12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 갔다 하는지라."
자신을 위해서 기념비를 세웁니다. 사울의 하는 행동들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것만 골라서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무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사울의 범죄 행위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사울과 같은 죄를 얼마나 많이 짓습니까? 그런데 나의 죄는 용서해 주시더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악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과 같은 죄를 나도 범했습니다. 나도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갑니다.
2. 버림받은 사울에게 악신이 임합니다.
삼상 16:14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났다는 것은 심판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했다고 합니다. 악신은 사람을 번뇌케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은 우리들을 평안케 해 줍니다.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 우리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아주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수심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사 되기 전에 저 자신도 그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복음의 자유와 평안으로 발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불안과 공포, 이렇게 했다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자녀들에게 저주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들 때문에 마음의 참된 안식이 오겠습니까? 사실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유도한 것도 잘못입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도 잘한다는 것입니다. 헌금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복음의 자유를 알고 느끼고 경험하고 계십니까? 사탄 마귀에 유혹 당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불안과 공포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기쁨은 사라져 버립니다. 사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번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 했으면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고 했겠습니까?(시 127:2)
마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악신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의 신하가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합니다.
3. 다윗의 음악 연주
삼상 16:23에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범죄 하므로 악신이 사울 안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악기로 무슨 음악을 연주했겠습니까? 그 연주는 다른 음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원하는 거룩한 음악이었습니다. 연주할 때 하나님의 영이 찾아 오셔서 사울에게 있던 악신을 쫓아 주시므로 사울이 상쾌하여 졌습니다.
그 음악이 하나님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악은 3가지 역사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울이 상쾌하여 졌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울이 새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숨을 자유스럽게 쉰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울의 육체적인 몸을 새롭게 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숨을 정상적으로 쉬지 못하면 병들거나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악은 육신의 숨을 자유스럽게 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사울이 "낫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아졌다는 말입니다. 히브리말로 "더 좋아졌다"라는 말입니다. 음악을 통하여 그 사람이 더 좋아지게 했습니다. 마음과 정신을 좋게 해 주었습니다.
셋째, 악신이 떠났습니다. 다윗이 노래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윗이 수금으로 음악을 연주했을 뿐입니다. 다윗은 음악을 연주했는데 악신이 물러갔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14) 찬송이 육신과 마음과 정신을 낫게 해 주는 영력이 있습니다. 찬송이신 여호와께서 찬송으로 악신을 물러가게 합니다. 인간의 영을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밖에 없습니다. 악신이 자잡고 있는 곳에 하나님의 노래가 찬송되어 지면 여호와의 신이 임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신은 쫓겨나게 됩니다. 이때 인간이 치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때 악신이 힘있게 임합니다.
삼상 18:6에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계십니다. 다윗의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승리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점점 사산 너머로 지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 18:7) 사울이 전쟁에서 적들을 천명 죽였다면 다윗은 만명을 죽였습니다. 사울보다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여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돌아올 때 사울은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8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영광을 받지 못해서 몹시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인간 자신을 찬양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은 떠나고 악신이 힘있게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찬양 받기를 원한다면 내 속에 악신이 힘있게 내립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악신에 사로잡힌 사울이 하나님의 노래를 연주하는 다윗을 창으로 던져 죽이려고 두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삼상 19:9∼10)
말씀 묵상과 기도
깨끗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그 교회에 들어가면 마귀는 쫓겨날 줄 믿습니다. 만약에 타락한 교회, 세속에 물들은 교회라면 세속 음악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거룩한 음악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찬미를 할 때 하나님의 영이 그 향기를 인하여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찬양이 없는 예배는 안 됩니다. 찬양이 없는 말씀 선포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잡히실 것을 아시고 그 어렵고 힘든 일의 승리를 영적인 영력의 표현으로 제자들과 함께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찬양은 어려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나와 함께 해 주고 계신다는 확실한 징표입니다. 내 입술을 통해서 고백되어진 찬양은 고난을 극복하게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도록 해 줍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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