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첫줄을 음미해보십시오. 성경의 첫줄이 될 가능성이 있은 수많은 후보 문장 가운데 왜“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문구가 성경을 여는 영광스런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마치 왕적 권위를 지닌 장엄한 선언문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 우연하게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 존재의 빚을 지고 있다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면, 그분께서 자기의 말씀이 거둬들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의 심연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첫 문장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시는 유일한 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에게, 사람이 즉음의 땅 사막과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호흡)으로 사는 줄을 배워야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신 8:3. 참조, 마 4:4; 눅 4:4).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선함”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선한 창조”(Good Creation)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1장에는 반복되어 등장하는 독특한 용어가“좋다”(히브리어,“토브”)는 단어입니다. 아마 하나님도 자신이 만드신 세계를 보시고,“와우,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거야!”하시면서 감탄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탄하셨다면 그 세계야 말로“좋은 세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좋은 세상에는 온전한 질서가 있습니다. 넘어가지 말아야할 경계선들이 질서 있게 자리 잡고 있는 세상입니다. 물은 물로, 뭍은 뭍으로 있어야합니다. 하늘과 땅 가운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자신들의 자리와 위치가 있고 개별적인 역할과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지경과 영역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입니다. 장로 교인이라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을 기억해 보십시오.“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아멘!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는 창세기 1장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절이 권위 있는 왕적 칙령으로 시작되면서, 첫째 날과 넷째 날, 둘째 날과 다섯째 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서로 상응하면서 창조의 리듬을 엮여냅니다. 첫 삼일이 주로“가르고 모으는”일을 통하여 형태가 없었던 땅(“땅이 혼돈하고”)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나머지 삼일에는“만들고 채우는”일을 통하여 땅의 공허함(“땅이 공허하며“)을 제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리듬 중“침묵과 웅변의 리듬”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할 멋진 삶의 리듬입니다. 길고 긴 태고의 침묵 끝에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천상에서의 긴 숙고 끝에 이루어진 결과가 창조입니다. 섣부른 말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온전하고 좋은 세상, 질서와 화음과 조화로 가득한 세상, 창조적 활력으로 가득 찬 세상의 출현을 보게 된 것입니다. 분주하고 어지럽고 소란 한 세상에서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의 선율을 타야하지 않을까요? 아마 하나님도 그런 삶을 사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얼쑤, 보기에 좋다!”라고 흥겹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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