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이해는 초대교회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성경신학의 발전과 함께 다시금 신학사의 지평 속에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해석의 다양성은 존재한다. 해석의 다양성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것이 성경적 해석인가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해석된 내용이 곧바로 인간의 윤리적 삶의 전제로 작용한다는 점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하여야 하며 이를 우리 삶의 윤리적 전제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여러 견해를 먼저 제시한 후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성경의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삼분설(trichotomy)
1) 내용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삼분설적 개념은 이상계(理想界)와 현상계(現象界)를 이원론적으로 파악했던 헬라의 우주관이 인간이해에 유추 적용되는 가운데 인간론적 이원론으로 발전되면서 기독교 신학에 수용된 것이다. 즉 신(神)이 제3의 중간존재인 로고스를 통하여 물질계에 연결되듯이 인간의 영은 혼을 매개로 하여 몸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개체로서의 혼은 물질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 존재인 영육적(geistleiblich) 성격의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세 가지 요소(몸, 혼, 영)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분설적 견해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구별에 있어서 식물은 몸(물리적 본성)만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은 몸과 혼(이성과 감성의 근거, 정신적 요소)만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몸과 혼과 영(종교적 요소) 모두를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이러한 삼분설적 견해는 초대교회의 이레니우스와 아폴리나리우스, 중세기에는 신지학적(神知學的) 노선의 신학자들, 19세기에는 대다수의 중재파(仲裁派)신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웥치만 니, 솔로몬, 스코필드 주석성경 등에 의해 옹호되었다. 그러나 점차 이 견해는 비성경적 견해로 신학자들에 의해 배격되고 있다.
2) 성경적 근거
삼분설은 인간의 본성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성경구절들이나 혼과 영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 본문들로부터 성경적인 근거를 찾고 있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과 히브리서 4장 12절이 그 대표적인 예(例)이다.
3) 비판
첫째, 삼분설은 인간의 단일성에 위반되기 때문에 잘못이다. 용어 자체가 '삼중의'라는 와 '자르다'라는 으로 이루어져 인간을 세 부분으로 쪼갤 수 있다는 견해이므로 이는 거절되어야 한다.
둘째, 삼분설은 헬라 철학의 영과 육의 이원론적 대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영과 몸을 중간적 물질인 혼이 연계한다는 것은 영(비물질)은 고등한 것, 몸(물질)은 저급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이원론적 대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성경에는 이원론적 긴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셋째, 삼분설은 영과 혼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을 두지만 성경은 이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을 두지 않기 때문에 잘못이다. 즉 삼분설자들이 중요한 성경적 근거로 삼고 있는 여러 본문들 속에서 인간 속에 분리될 수 있는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결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데살로니가전서 5:23이나 히브리서 4:12 등의 구절은 혼과 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인(全人)을 언급하는 다양한 표현 양식이며 이러한 표현 양식은 눅 10:27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혼과 영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들이 성경 가운데서 종종 교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늑1:46-47, 창35:18, 시31:5 등). 결국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삼분설자들의 주장은 그들 자신의 성경해석학적 허약성을 드러낼 뿐이다.
2. 이분설(dichotomy)
1) 내용
이분설은 인간이 두 요소, 즉 물질적 관점의 육체와 비물질적 요소인 영이나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다. 아폴리나리우스가 성자의 무죄성을 변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삼분설을 채택한 이후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분설은 교회 내에서 폭넓게 주장되어왔다. 이 견해는 초대교회에서는 서방교회의 전통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중세 스콜라신학 속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발견되며 종교개혁이후 20세기까지의 개신교 신학자들에게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이분설은 몸(물질적 요소)과 혼(비물질적 요소)의 상관관계를 규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기회원인론(Occasionalism)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의존하며 물질과 영은 각기 독립된 법칙에 따라 작용하며 서로 어떤 협동 행위의 가능성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양자가 협동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어느 한 편이 작용할 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다른 한 편에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산출해 낸다는 이론이다.
(2) 병행론(Parallelism)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이 대표적 이론이다. 상호간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다는 점에서는 기회원인론과 동일하나 하나님의 끊임없는 개입을 통한 협동행위는 부정한다. 대신에 몸과 혼이 서로 완벽하게 상응하도록 하나님이 몸과 혼을 만드셨다는 이론이다.
(3) 실재론적 이원론
몸과 혼은 상호 작용이 가능한 독특한 두 실체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두 실체의 상호 작용 방식은 여전히 인간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다. 양자는 유기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 양자간의 연합은 생명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2) 성경적 근거
삼분설이 살전 5:23과 히4:12을 근거로 하듯이 이분설도 이 구절들을 근거로 한다. 단지 해석을 달리할 뿐이다. 즉 위 본문에 나오는 혼과 영은 서로 다른 별개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일 뿐이라는 견해다.
또한 영과 혼의 교호적인 사용이 성경에 빈번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경은 어떤 곳에서 인간을 '몸과 혼'으로(마6:25, 10:28) 또 다른 곳에서는 '몸과 영'으로(고전7:34, 골2:5, 약2:26) 표현한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혼이나(창35:18, 왕상17:21) 영이(시31:5, 눅23:46, 행7:59) 떠나가는 것으로 기술한다.
결국 이분설의 성경적 근거는 성경이 혼과 영을 별개의 실체로 보지 않고 동일한 영적 실체에 대한 다른 표현 양식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3) 비판
이분설 역시 삼분설과 동일한 두 개의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첫째, 이분설 역시 인간의 단일성에 위반되기 때문에 잘못이다. 용어 자체가 '이중의'라는 와 '자르다'라는 으로 이루어져 인간을 두 부분으로 쪼갤 수 있다는 견해이므로 이는 거절되어야 한다.
둘째, 이분설 역시 헬라 철학의 영과 육의 이원론적 대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분설이 삼분설의 비성경적 국면에 대한 비평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이분설 또한 헬라 철학의 영육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여 영은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것이며 몸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이원론적 대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성경에는 이원론적 긴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셋째, 영과 혼은 동일한 영적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이라는 것은 올바른 주장이지만 이것만으로 인간의 구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다 진술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성경은 인간을 하나의 전체, 하나의 완전, 하나의 단일체로 기술하고 있다.
3. 단일론
1) 내용
인간이 물질적 요소(몸)와 비물직적 요소(영/혼)가 각기 개별 실체로 존재하면서 서로 합성된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통합된 단일 존재라는 이론이다. 즉 인간은 서로 분리할 수 있는 부분들의 집적((conglomeration)이 아니라 단일체,전인(全人)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삼분설과 이분설의 영육이원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등장하였으며 데카르트적 이분설 즉 '몸과 영의 별개 실체로서 합성된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를 극복하는 방안이다.
2) 성경적 근거
첫째, 구약 성경은 인간이 두 개의 별개의 본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하는 이분론이나 이원론을 철저히 배격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관한 4가지 용어(네페쉬, 루아흐, 레브, 바사르)들은 단순히 인격체의 단일성의 상이한 측면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바사르=몸'( )는 인간의 몸을 지칭하며 무한하신 하나님과 구별되는 연약하고 덧없는 존재로서의 제한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네페쉬=혼'( )는 몸과 대치되는 '보다 고상한 부분'(nobilior pars)이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가리킨다. 또한 '루아흐'( )는 인간을 지칭할 때 전인을 의미하므로 네페쉬와 중첩되는 의미이지만 루아흐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을 가리키며 네페쉬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인간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보통 마음이라 번역되는 '레브'( )역시 전인(全人)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이와 같은 구약 용어의 신약적 번역 용어들 '네페쉬→프쉬케( )', '루아흐→프뉴마( )', '레브→카르디아( )', '바사르→사륵스/소마( / )' 역시 인격체의 단일성의 상이한 측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3) 비판
성경이 삼분설과 이분설을 지지하지 않고 단일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의 단일성만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이원적 구조를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즉 인간은 全人으로서 하나의 인격체이지만 그 속에는 엄연히 육체적 측면과 비육체적 측면의 두 측면이 있다. 또한 단일론이 극단적으로 나갈 경우 영혼소멸설과 연관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원성(Duality)을 인정하지 않든지 또는 죽음과 부활 사이에 영혼이 소멸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단일론은 성경적인 견해일 수 없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관한
이해는 단일론에 가깝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단일론도 성경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즉 단일론은 전체로서의 인간, 전인으로서의 인간, 단일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하지만 인간에게 존재하는 엄연한 영-육 이원성을 간과하기 쉬운 이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적 단일체로서 보는 인격적 단일성에 대한 강조와 인간에게는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 혹은 영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구조적 이중성에 대한 강조를 동시에 주장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구조적 본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이며 이는 곧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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