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있어서 영성이란 단어에 대한 구약적 뿌리는 영(로)에 해당하는 단어인 '루아흐'이다.
'루아흐'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바람, 숨, 생명의 원리, 하나님의 능력 등을 의미하는 데, 이 단어는 구약에 약 389회 사용되어졌다.
구약에 있어서 영에 대한 이해를 몇 마디로 요약해보면, 영은 인간이나 생물에게 있어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인간에게 임하는 분으로서 소개되며, 하나님의 영은 인간세계에 임하여 생명을 소생시키고, 공의와 자비를 베풀며, 인간을 변화시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만들며, 또한 능력을 제공하는 본체로서 소개되어지고 있다.
구약에서의 영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면에 있어서 초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초월적 영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하는 내재적 영임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고 또한 인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 있어서 영의 통합적 특성을 들 수 있다.
기독교적 영성에 대한 이원론적 이해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바울로, 영과 육을 대립시켜 사용한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으로 대조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대조시켜 설명한 영과 육에 대하여 그것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어 있는가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영적인 삶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빠지게 된다.
즉 육은 물질적인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그 결과, 바울이 인간의 육신과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더럽고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 가운데서도 영이라는 실체만 절대화한 것처럼 오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의 영성은 극단적 신비주의, 반 지성주의, 그리고 금욕주의 등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영적인 삶과 육체적인 삶을 대비시킬 때 그것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대립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에게 영적인 삶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에 육적인 삶이란 성령 바깥에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삶의 모든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다(롬 8:5∼14, 고전 3:1-3; 갈5: 16-25).
그러나 성경은 이원론적 이해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진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매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부분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두 부분은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긴밀히 통합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물질적인 면을 육(肉)이라 지칭하고, 비물질적인 면을 영혼(靈魂)이라고 할 때 이 육과 영은 구분될 수 있는(separable)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라, 구분될 수 없으나 구별될 수 있는(not separable but distinguish-able) 이원성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실체이다.
인간의 육체는 땅으로 환원되어지지만 인간의 영은 영이신 하나님과 영존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영성은 이원론적인 일면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의 영, 초월의 영은 인간의 삶 속에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변화를 일으켜서 인간의 삶 전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원론적 이해를 거부한다.
기독교의 영성은 삼위론적 특색이 있다.
이수영 교수는 기독교 영성의 삼위론적 요소를 다음의 세 가지로 기술했는데,
창조론적 영성, 기독론적 영성, 성령론적 영성이 그것들이다.
"첫째, 창조론적 특징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창조자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의지, 지혜, 창조자의 능력, 인간을 향한 창조자의 뜻,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 등이 기독교 영성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창조자의 뜻을 실현하는 삶으로 초대한다. 창조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영성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세계의 질서와 법칙에서 하나님의 본질과뜻을 읽을 줄 아는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주는 닫혀진 체계(closed system)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기적을 베푸는 열려있는 체계로서(open system )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적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진리를 항상 인정하며 세상을 바라다보는, 이 세상 너머의 세계에 열려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영성인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또한 초월자이시다.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인간의 삶을 얼마간 살다가 없어질 유한적 삶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존재로 믿는다. 그리하여 정서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소속감을 깊이 경험하며, 또한 삶의 추구에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궁극적인 것으로써 추구하며 산다. 기독교의 영성은 다가올 세계를 앙망하기 때문에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이 세상의 참된 존재 의미와 목적, 가치 그리고 그 한계를 바로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둘째, 기독론적 특징이다.
기독론적 특징이란, 인간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완성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의미한다. 기독론적이라 함은 성육신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 되어졌다(롬5:1∼10; 고후5:11 ∼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로까지의 철저한 회복이며(롬8:12∼17; 갈4:6),
이 관계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 적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의 회복까지도 의미한다. 성육신 영성은 비움과 충만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빌2:5∼8;마4:1∼11). 비움 없이 충만이 없고, 죽음 없이 부활이 없으며,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비움은 기독교적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며, 우리는 참된 삶을 경험하기 위하여 먼저 옛 사람의 죽음을 통과하여야 한다(롬6:1 ∼11).
셋째, 성령론적 특징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무지한 의식을 깨우쳐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분이다. 또한 인식된 진리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는 분이기도 하다. 우리를 위로하며, 인도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케 하는 분이며 우리를 은혜 안에서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분이다. 이러한 성령론적 영성은 기독교관의 내재적 특징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초월자 하나님으로만 동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신비스럽게도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인 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또한 이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 영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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