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9. 8. 10:23

제가 어린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성경의 인물은 요셉과 다윗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특히 다윗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꿈을 크게 갖게 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성경을 읽기 시작한 후 다윗에 대한 그 멋진 동화는 여지 없이 끝나가고...
그의 아픔과 번민 고난이 더욱 더 부각되고 각인됨을 보게 됩니다.
오늘 다윗의 생애 가운데 잘한일도 많았지만 잘 못한 일중에 한가지- 인구조사를
살펴보면서 어떠한 삶을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삼하 24:10) 이 고백은 다윗의 말년에 한 참회입니다. 인구조사를 한것에 대해서 크게 찔림을 받고. 크게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이 고백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다윗은 분명히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다음에도 징계는 계속되어 많은 백성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이 그 영이 부정하게 될 경우에 따르는 비극을 보여준 선명한 사례입니다.
인구조사가 왜 이토록 참회의 대상이 되는것입니까. 성경에는 여러번 인구조사가 실시되었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때 다윗의 인구조사는 책망을 받은것일까요. 그 배경이 이렇게 설명되어있습니다.
"사단이 일어나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곧 다윗은 그렇게 오랜 세월 연단을 받았으면서도. 또 자고한 마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자기과시를 은연중에 들어냈던 것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은 동기. 별로 의식되지 않은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채널에 예민하게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뼈아프게 참회한 다음에도 많은백성이 죽음을 당한 기록이 남습니다. 한번 더럽혀진 영성이 회복되기까지 많은 생명들이 고통을 당하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기록입니다.
레위기에서도 어떤 일로 부정하게 된자들이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그 부정함을 씻고 속죄제를 드린 다음에도. 하루나 또는 한 주간씩 사역을 금지 시킨것도 모두 이런 맥락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부정한 그림 또는 글을 또 그런 행동을 한 다음에 진심으로 회개할지라도 그 부정함의 영향이 우리마음과 뇌속에 남아있음을 체험합니다. 그리할때 사역자들의 사역은 권위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자고함"이 큰 죄가 되는것입니까. 부정한 마음. 손바닥만한 어둠이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가로 막게 되는 사실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같은 위대한 전도자도 그 몸에 "가시"를 평생 지니고 사역하게 됨도 바로 이 자고함을 제어하는 은혜의 장치로 주신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자고함을 내려놓기 까지 40년의 광야의 깨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때 말합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 출4:10.13)
참으로 간구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살피소서. 몸과 마음과 영을 더욱 다스리소서. 깨끗하게 하소서. 정한 양심으로 섬기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