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의 작은 나사로들
성경의 인물중 나사로는 신약에 두사람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입니다.
특별히 오늘 저는 누가복음 16장에 나타나는 거지 나사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거지 나사로는 누가복음 16장에 보여지는대로 헌데를 앓는 거지요 병든자요.
외로운 자이며, 부자집 대문에 누워 지낸 그래서 개조차 그 상처를 핥는 하잘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갔는데. 이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낙원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영광을 누립니다.
도대체 이 거지 나사로가 이 땅에 있을때 무엇을 했기에 이런 대단한 영광을 누리는 것인지 예수님은 설명을 하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숙제입니다.
나사로는 눈에 띄게 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는 눈이 있는자에게는 이 거지 나사로는 참으로 존귀한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역하는 교회안에는 이런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하며. 외롭고. 병들어 있으며. 그외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사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이같이 남다른 고난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사시는 성도들의 모습이 나사로같이 보여지기에 이 성도들을 "작은 나사로" 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로서 사역할때에 때때로 마음이 무겁고.나태해지며. 상처를 품고 힘들어 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특별합니다만. 바로 이 "작은 나사로"들을 통해서 도전과 치유와 청결함을 입게 됩니다.
이 분들은 가난하고 약한 중에 있기에 눈에 띄는 그런 사역은 하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교회의 외형적인 사역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분들은 뛰어난 학식과 권세와 재물과 건강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교회에 별 도움이 되지못하는 존재로 취급받기가 쉽습니다. 무시까지 당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교회의 재정이나 교회의 품위를 위해서는 필요없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고 오히려 도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사로"들은 교회안에서 학식으로도. 권위로도. 재물로도. 건강으로도 이룰수 없는 특별한 일을 이루고있는 것입니다. 그 몸으로 당하고 짊어지고 있는 고난의 멍에로 인해서 아주 귀한 사역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로 교회답게"하는 사역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로 하여금 청결함을 지니도록 하는 일을 이 분들은 하고 있는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무엇보다도 목회자가 청결해야 그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것임을 부인할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사로"들이 목회자로 하여금 청결하게 서도록 하는 청량제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작은 나사로"들을 볼 줄 아는 눈이 사역자들에게 열려야 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이 작은 나사로들이 교회의 보화요 생명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존중히 여길 분들이요. 감사하게 바라보아야 할 분들임을 인식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있게 하신 이런 귀한 "나사로"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들을 살피십시요 그들을 도와 주십시요.
저는 부자가 지옥에 가게 된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의 대문앞에 헌데를 앓고 고통당하는 거지였던 나사로를 살펴보지 아니하고 무관심함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