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진정한 권위는 존엄과 같은것입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8. 31. 10:09

방향

 

 

저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조금은 거부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나라 이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한마디 해야 할 의무감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요즈음   나라의   되어지는   모양이  심히   염려스러울  지경입니다.
시장바닥같은  소란스러움이  너무도  심합니다.
시장의   시끌벅적하는것은  차라리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소리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안에서  되어지고  있는  소란함은  무질서. 무권위 자체입니다.

한가정에  중심이  있어야 하듯  어느  공동체에서나  중심이  바로서야  되는데   지금  이나라는  중심이   무너져  버린 상태입니다. 대통령부터가 "탈권위"라고  하지만,  그릇된  권위주의를  탈피하는것과 무권위는  전혀  다른것입니다.
권위는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는  존엄과  같은것입니다. 존엄이란  "--다움"에서 나는것입니다.
"저사람은 성도답다 ."  여기에 존엄이 따르고 권위가 서게  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움이   특별히   요구됩니다. 후보자시절과   만2년의 임기를 감당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인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안에서   대통령의  말이  우스개  소리로  들릴  정도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것인지  의미가  분명히  파악이  안된다  합니다. 말은  많고   구사하는  용어는  현란한데   막상  정리하자니 핵심이 잡히지  않는다  합니다.

어떻든   나라 구조의   모든것이 갈기 갈기  찢기어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  핵 문제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어려운데  교육계도. 근로자. 농민들도  못살겠다  아우성입니다.   나눌  "파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자기몫을 더 많이  달라  아우성입니다.  나눌  "파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목전의  이익만   탐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구석  시원한곳이  없습니다.

선장이  밉다고   같이  타고 있는  배를   손상시키는  행동이나. 구멍을   뚫는  일은   절제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의식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선장이  밉다고   선장을  교체할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미 한번의 탄핵소추를 통해서 이미 우리는 그 상처와 갈등과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어찌할까요?
이 모든  혼돈과  같등과   자조적인  다툼은  우리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저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현장속에서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썩을대로 썩어서 코를 막아야 하는 세상의 부정적인 사건속에는 언제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들을 막고 그들을 바로 인도해야 할 우리가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잘못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이 더  철저하게  깨지고  부셔져야  할것입니다.

지금의  이  혼돈은  새날이  밝아오기 직전의  어둠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바는,    -"우리끼리 이야기 입니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분이  링컨같이  되고 싶다한 점에서   이 기도가  나온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가고있는  과정에서  깨지고  부셔지고. 아파하고.  그리고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란함과   진통은  무질서. 무권위 같아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엄중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때문에  이  소란은  생산적이고   앞으로 열릴  새시대에  비하면 잠깐의  진통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방향을  뚜렷이  세우고
계속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기도의  골방이  얼마나  중요하다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 북녘땅까지  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저 북녘땅이  열리고  복음이  들어가기  까지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고,  일어날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기에. 또  그 경륜에  맞추어  믿음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중보자"의   위치와  사명을 굳게  잡아야 겠습니다. 단  몇사람만이라도  이같이 깨어 있기만  하면   이시대에  참으로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것을  우리 눈으로 보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