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8. 24. 09:37
 잠이공원
 
 
 
벗은 몸의 부끄러움이 더 좋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따라 겟세마네라는 동산에 갔습니다.
나의 스승 예수님은 땅에 엎드리어
 
이 때가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늘의 아버지를 부르며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잠결에라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주여 제발 이 때를 피하지 마소서"
"진정 하나님이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면 영광을 얻으시어
나를 금의 환향하게 하소서"
"주여 내가 그것을 위하여 3년이나 주를 따라 왔습니다.
이제 와서 그렇게 기도하시면 내 인생은 뭐가 됩니까?"
주님의 기도는 시간이 더할수록 간절했고
나와 동료들은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벽에
싸늘한 배신의 목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유다의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사들의 포승과 뭉치 앞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어린양이 되어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분이 저렇게 나약하단 말인가?
예전에 행하시던 그 능력은 어디갔단 말인가?
저분이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신 분이란 말인가?
정말 이 사람이
메시야란 말인가
정말 메시야라면
정말 메시야라면
이럴 수 없지?
.......
......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나는 맨 몸에 홑이불을 걸치고
멀찌감치 그를 따라 갔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뜰에서
더욱 심한 모욕과 매를 맞았습니다.
"아! 이것이 나의 스승의 최후란 말인가?"
이것이 그분의 결말이라면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나를 보호해 줄 수 없는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이 나약한 사람를 기대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홑이불 조차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벗은 몸의 부끄러움이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
참으로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연약하여 빼앗긴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바꾸어 주기 위하여
지옥의 사망권세를 폐하시고 각 사람의 죄를 속죄하고
아버지로부터 죽을 권세를 얻어 죽으신 죽음이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진실로
사랑이란?
모든 것을
믿는 거예요
모든 것을
바라는 거예요
사랑은
만남으로 알아요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죄인
병든 사람
......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요
그런 사람을
엘피스는
행복한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Q.T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막 14:5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