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감
만족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다.
우리의 유익을 이루는 일에 우리는 불만을 품을 터인가?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돈 자루를 던져 준다고 한다면,
그 과정에서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좀 까져기로서니,
이를 기화(奇貨)로 돈을 자루 가득히 횡재한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괴로워할 일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은 고난으로 우리를 상하게 하실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기 위한 조치이다.
이런 고난은 우리에게 영광의 중량(重量)을 안겨다 준다. 그런데 우리는 불만을 품을 셈인가?
터무니없는 근심은 보다 복된 일에서 마음을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살기 위해 어찌하나 궁리하는 사이, 우리는 어떻게 죽을까를 망각한다.
우리는 근심함으로 한 치의 위로를 보태기는커녕 한 마장의 슬픔을 추가시킨다.
그대는 이곳에서 하루밖에 더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대가 갈 길은 단거리에 지나지 않건만, 단거리를 가는 데 장거리 식량이 무슨 소용인가?
만일 여행자가 목적지까지 가기에 충분한 식량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욕심낼 것이 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눅18:24)
그가 가진 무거운 황금의 중량이 그를 하나님의 동산에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조금으로 만족하라. 하늘나라로 통행하는데 족할 만큼만 소유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겸손은 그물에 달린 납제 추와 같이 정욕으로 솟아오르는 영혼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만족하는 마음은 의기소침한 침체된 심령을 코르크처럼 위로 치솟게 하는 역할을 한다.
허다한 사람들이 자기의 정욕을 유지하려고 치욕도 감수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치욕을 감수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들은 자기들의 수치거리를 영광으로 삼는다(빌3:19).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영광된 일을 수치스러워 하는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의 공허함에 불평을 토할 필요가 무엇인가?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시16:5)라고 다윗은 말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어디가 되어도 좋으리라.
그곳이 병상이 되었든지 혹은 감옥이 되었든지, 나는 말하리라.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 라고.
"나의 모든 삶과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당신에게 풍부하게 공급해 주시지 않았던가.
긍휼이 그대 위해 밥상을 차려 먹여 주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먹지 못한다.
긍휼이 커튼을 내려주고 그대 옆에 수호천사들을 세워놓지 않는다면,그대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TOMAS WASTON 의 명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