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사람
이스라엘의 12지파들 중에 좀 특별한 지파가 있다. 레위 지파이다.
원래 레위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셋째 아들이다.
레아는 이 셋째 아들을 낳고 비로소 안심했다.
이들을 셋씩이나 낳아주었으니 남편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와 연합할 것이다.
그래서 '레위' 즉 '연합'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야곱은 이 레위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죽기 전에 12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했다.
그중 레위에게는 특별히 말하지 않았다.
그 형 시므온과 함께 묶어서 말하고 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 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그런데 후에 모세가 죽기 전에 12지파를 축복할 때 레위에게 축복한 내용은 전혀 다르다.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신 33:8∼11).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던 레위 지파이다.
괜히 그들과 가까이하거나 그들과 어울리다가 함께 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레위 지파에게 엄청난 축복을 하였다.
①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혀 백성들에게 전하고
②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교육시키며
③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식적인 제사를 집행하는 일이 그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의 재산을 풍족하도록 친히 책임지시며, 누구든지 그들을 대적하거나 미워하는 자는 그 허리를 꺾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저주에서 복으로 바뀌어진 것일까 ?
이스라엘 사람들이 싯딤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싯딤'은 '아카시아 나무'란 뜻으로서 모압 평원 북쪽 끝에 위치한 '아벧 싯딤'을 말한다(33:49).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여행 중 마지막으로 진 친 곳이며, 바로 이곳에서 모세가 신명기에 언급된 고별 설교를 한 것이며,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정탐꾼 파견을 한 곳이기도 하다(수 2:1, 3:1).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바알브올 사건' 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발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민 31:16, 계 2;14).
즉 발람의 꾀에 미디안과 모압이 연합하여 주도 면밀하게 시행되었던 것이다.
모압 여인들이 미인계를 써서 먼저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음행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여인들이 바알 신에게 제사할 때 그들을 불러들여 함께 우상에게 절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모습을 보고계신 하나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는가?
모압 여자들에게 빠져 음행과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목매달고 바알브올에게 빠진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이렇게 처형당한 사람말고 염병으로 죽은 사람만도 24,000명이었다.
비로소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회막문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 온 회중이 통회하는 그 순간에도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자행하려고 그 여인을 자신의 장막으로 끌어들인 파렴치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므리'라는 사람이었고 미디안 여인은 수르의 딸 '고스비'였다.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이런 모습을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장막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두 남녀의 배를 꿰뚫어 죽였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다.
회막문에서 통회했던 이스라엘의 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지 못했으나, 비느하스의 의로운 한 행동으로 이스라엘을 향하던 하나님의 진노(염병)가 멈춰지게 되었다.
만약 비느하스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을 것이다.
더 엄청난 사람이 염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질투하였다.
비느하스의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그분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그래서 그 행위가 일종의 '덮개'(속죄) 역할을 하여 백성들의 죄를 가리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으셨다.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약속하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신념과 원칙이 있다. 이것을 인생관이라고 한다.
인생관이 분명한 사람이 있지만 환경과 형편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형편에 따라 흔들리고 환경에 따라 신념이 바뀌는 사람이 아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인생관이 뚜렷해야 한다.
주일을 성수하기로 했으면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성수할 수 있는 사람, 십일조를 하기로 했으면 어떤 형편에서든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을 받았으면 변함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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