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말씀에 기대는 모습입니다
16 세기의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의『기독교 강요』안에는 '신앙'에 관한 항목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매우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신앙은 달려야 할 마라톤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야 들여야 할 '선물'(gift)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기독교 강요』안의 이 부분은 '신앙의 입문서' 혹은 '신앙의 첫걸음을 위한 교본'이라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초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무엇이며, 신앙을 흔들어 놓는 수많은 삶의 문제들에 직면하여 신앙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이란 몇 가지 명제들이나 원리들로 축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소리를 내어 암기할 수 있는 규칙들로 환원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은 경험되어지는 감정이나 정서도 아닙니다. 신앙은 '신뢰의 관계'(relationship of trust)를 가장 중요한 강조점으로 갖고 있습니다. 칼빈의 인도를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측면으로 신앙이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말씀에 기대는 모습입니다
칼빈은 신앙을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치 태양의 광선을 태양 자체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앙은 그리스도께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Word)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앙은 성경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word)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또 다른 말씀인 성경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발견되는 장소는 특별히 말씀인 성경 곁에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누가복음 안에 실려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열 두 살 되던 해에 예수의 부모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가, 그를 잃어버린 내용을 담고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서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소식을 접한 후 심히 낙심하여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 관한 에피소드가 그것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는 참으로 코믹(comic)한 점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마리아는 자녀가 몇 명을 두었기에 아들을 잃어버린 것을 몰랐을까? 그것도 하룻길을 간 후에 비로써 아들을, 그것도 큰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좌우간 참으로 우스꽝스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잃어버린 아들을 결국 삼일만에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찾았을까요? 성전에서, 그것도 그가 유대의 학자들과 선생들과 성경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예수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누가 2:42-49). 한편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에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낙심한 두 제자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누가 24:1-35). 그들은 행인을 가장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후에 부활하신 예수를 알게 보게 됩니다. 언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알게되었단 말입니까? 그들의 고백 속에 그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부활하신 예수) 성경을 풀어줄 때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고 말하였습니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제시하고 있는 공통적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성경에서, 성경 옆에서, 성경 안에서, 성경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말씀에 근거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은 마치 거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선택하여 신앙의 기초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라는 거울을 집어들고 쳐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마치 우리의 신앙의 건강을 위하여 날마다 조금씩 들이키는 강장제(强壯劑)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전 세대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에게 날마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강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칼빈이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매일 성경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엄하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Word)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또 다른 '말씀'(word)인 성경 안에 기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소파에 발을 얹어 놓고 조용히 안정을 취하며 휴식하는 모습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리스도와 성경에 편안하게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함과 확신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이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아마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에 대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혹은 이단들에 대해, 혹은 어떻게 하면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매우 중요한 신앙적 문제이긴 하지만, 신앙의 자세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기대어 그분 안에서 안식과 평온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글은 류호준교수님의 저서 "정의와 평화가 포옹할때까지" 중 "신앙이 무엇인가 "를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