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 나누어 주라-고후 9:8-10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신약학 김병국 교수님의 설교문입니다.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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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1. 서론: 재물의 축복을 얻는 방법
사람들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물질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잘 복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들 중 하나를 제시해 줍니다.
동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는데 그 이유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고"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혼자 누리기 위해 물질을 구하면 안주십니다.
그러나 착한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위해 구하면 주십니다.
동기를 변화시킴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다음에도 세상의 방법대로 부자가 되려고 했다가는 괜히 망신만 당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우리 속의 동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속의 동기를 변화시키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착한 일을 하겠다는 소원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을 주십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재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주시되 본문의 약속대로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2. 본론: 구제에 힘써야 하는 이유
하지만 우리는 선행, 특히 구제하는 일에 인색합니다.
왜 그럽니까?
구제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돈이 손에 들어오면 그것을 꽉 쥐고 있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는 기독교인이 반드시 힘을 기울여야 할 일입니다.
(1) 구제는 가장 좋은 투자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구제는 가장 좋은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9절에서 구제하는 일을 독려한 후, 10절에서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라고 말씀합니다.
곡식을 추수하면 그 곡식의 용도는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 용도는 식량으로 삼아 먹어 버리는 것이고, 다른 용도는 다음 추수를 위하여 그것을 땅에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주신 재물에 대해, 그것은 심을 것을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심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제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장 먹고 싶지만 곡식을 아껴서 땅에 심으면 나중에 수십, 수백 배의 결실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장 나를 위해 이 재물을 사용하고 싶지만 그것을 구제에 사용하면, 나중에 그것이 수십, 수백 배의 복으로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곡식이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우리 보고 그것을 하나도 먹지 말고 다 땅에 뿌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씨와 먹을 양식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로만 주신 것 아닙니다.
양식으로 삼아 먹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부는 반드시 땅에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잠 19:17에 보니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이자를 추가해서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구제는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2) 구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치신다.
우리가 구제에 힘써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심하고, 그들을 괴롭히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사회를 치십니다.
출 22:21-2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사회적 약자들을 해롭게 한다는 것이 꼭 그들을 적극적으로 핍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핍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무관심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핍박하고 억누르고 있는 사회 구조 속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관심은 그냥 무관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무관심을 통하여, 우리는 사회가 그들을 핍박해서 얻어내는 불의한 이익의 분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 무관심하면, 그래서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답니다.
출애굽기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의 노가 격렬할 것이다.'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일 것이다'라는 등의 끔찍스러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이 무서운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힘이 있을 때, 우리 손에 하나님이 주신 씨앗들이 있을 때, 이것을 그들을 위해 뿌려야 합니다.
3. 결론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십니다.
왜 이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구제에 열심을 내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고,
정말로 그분이 성경 가운데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달라져야 합니다.
믿음은 '아멘'을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기독교인들로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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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선한 일에 쓰겠사오니 풍성한 재물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무슨 일에 재물을 써야 할 지 우리에게 주님 뜻에 합당한 비전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