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위한 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라는 명령인 동시에 하나님은 그러한 간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양식'이란 꼭 음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주", 곧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생활 방편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라는 말씀을 강조하심으로써,
성도들은 불필요한 축재에 대한 욕심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일용할 양식을 확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의 양식 확보를 위해 간구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에게"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담겨 있는 "기도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주기도문의 숨은 교훈은 "우리의 정신"이요,
"공동체의 정신"입니다.
한마디로 "나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이 이웃에게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불필요한 과다한 부의 확보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도, 사실은 이러한 공동체 정신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 할 때 그만큼을 누군가가 소유하지 못하게 되므로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께 만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많이 거둔 자도 있고,
적게 거둔 자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출 16:1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동체의 정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인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 많은 것을 벌어들였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로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위배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나누는 데 있습니다.
많은 것을 벌어들임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많이 주심을 이웃에게 많이 베풀게 하기 위해서라고 인식하는 데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정신, 나눔의 정신이 없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기도는 변질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인간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육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사용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육을 가졌기에 육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으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