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속에서의 참 쉼은...
전도자 솔로몬은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2∼23)라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한 이후 사람은 쉴 시간이 없다.
아무리 땅을 갈고 잡초를 뽑아줘도 가시와 엉겅퀴와 잡초가 무성하게 돋아난다.
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범죄자를 뽑아 가두고 격리시켜도 자꾸만 범법자가 생겨나고 있다.
피곤한 몸을 쉬어보겠다고 피서지나 휴양지를 찾아가 보면 오히려 더 짜증이 나고 피곤한 일이 생긴다.
이렇게 사람마다 평안한 안식을 애타게 찾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서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느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들 중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 한 군데 이상 학원에 다니고 어떤 부모는 과외학원, 컴퓨터, 피아노, 미술, 수영 등 너댓 곳을 보내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경쟁심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이 다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우리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왠지 성적이 뒤떨어질 것 같고 컴퓨터나 피아노를 배우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보낸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벌써 어려서부터 경쟁사회 속에 뛰어든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개를 봐라,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하고 다그친다.
시험지를 가지고 오면 성적이 올랐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야, 영철이는 몇 점 맞았니?"하고 먼저 물어본다.
자기 자식이 몇 점 맞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점수를 어떻게 맞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면 거기서도 경쟁이다.
승진 경쟁에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는 불안감이 항상 짓누르고 있다.
더구나 요샌 대부분의 회사들이 연봉제를 택하고 있고 구조조정이란 말이 사람을 더욱 주눅들게 한다.
조그만 사업이라도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살기 위해서는 더 뛰어야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고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
심지어 교회의 신앙생활도 경쟁이다.
어른들은 구역별로 경쟁을 붙이고 주일학교는 반별로 경쟁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일터에 나가서도 뛰어야 하고 집에 와서도 쉴 수 없다.
심지어 안식처라고 하는 교회에 나오면 거기서도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돈만 많으면 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해이다(전 5:11).
좋은 저택을 짓고 푹신한 침대에 누우면 편히 쉴 수 있는 줄 안다.
편안한 승용차가 쉬게 해 주는 줄 안다.
그래서 요새는 점점 중대형 승용차가 늘고 있다.
사우나탕이나 찜질방 같은 곳이 유행하고 휴게텔이니 하는 곳도 생겨났다.
그러나 문제는 몸만 편히 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즉 영혼이 쉬어야 한다.
몸은 침대에 누우면 쉴지 몰라도 마음은 예수님께 나와야 쉴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신 것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무거운 짐을 벗어야 한다.
늘 무겁게 짓누르는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사죄의 은총을 입어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너댓 번 이혼하고 재혼을 해도 만족이 없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무거운 짐을 홀가분히 벗고 나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마을로 뛰어갈 수 있었던 그런 경험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