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재능의 관계
바울은 성령개념을 두가지 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성령은 신앙의 사람에게 기적적인 능력을 부여해 주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을 제시해 준다.
바울의 카리스마에 관한 교리도 성령의 이중교역간의 긴장관계에서 이해된다.
던(James D.G. Dunn)은 성령의 초월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월적인 타자성은 바울의 카리스마 개념의 핵심이다…… 카리스마는 인간의 능력이나 재능의 행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향한 무조건적인 의존과 열려짐에 의하여 특정 지을 수 있다(Dunn, 1975, 255∼256).
카리스마의 이러한 초월적 성격은 카리스마들이 얼마나 초자연적(Supernatural)인가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20세기 카리스마 운동은 극적인 성격을 갖는 예언, 병고침, 그리고 방언 등의 은사들을 크게 강조한다.
그 결과로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아니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들과 사이에 분명한 한계선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카리스마 운동에 참여한 두 사람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의 증거들을 조심스럽게 조사한 후 이러한 구별이 성서적으로 합당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언급한 바 있는 영국의 성령운동의 기수 도날드·지는 성령의 은사들은 자연적인 인간의 재능과 선택에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 첨가된 것이라고 한다(Gee, 1963, 1,10).
지에 따르면, 진정한 성령의 은사와 증거는 그리스도인 회중들의 모임에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분명히 나타내 보여 주느냐 여부에 따른다(고전 12:7).
그러므로 은사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오든지 봉사와 가르침과 같이 자연적인 것이든 상관이 없다. 결정적인 시금석은 은사가 나타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느냐이다(고전 14:20). 지는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시작된 어떠한 활동들이나 순전히 인간의 타고난 재능을 훈련함으로 얻으지는 일들 가운데서도 성령의 임재를 체험케 한다면 그것들도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Ibid. 18,24,29).이렇게 카리스마를 이해할 때에 자연과 초자연의 구별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지가 지적하듯이 여기에서 "진정한 초자연의 개념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지의 카리스마 개념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바울의 Pneumatikos 개념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즉 어떠한 존재나, 사건이나, 교역자체 속에 초자연적인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Pneumatikos는 모든 것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발견하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은사로 받을 수가 있으며 롬 8:32은 모든 것이 은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독일의 성령운동의 기수인 비틴저(Arnold Bittlinger)도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한다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 짓기를 단순히 바울은 이 양자를 결코 구분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한다.
비틴저에 따르면 "나의 자연적인 재능들이 성령에 의하여 본래의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교회의 유익을 가져오게 될 때 타고난 재능들은 성령의 은사로" 바꾸어진다(Bittlinger, 70이하).
그러므로 비틴저에게 있어서는 고전 12:31에 암시하는 더욱 큰 은사들이나 세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성령의 은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인 의사의 모든 활동은 병고치는 은사라고 부를 수 있다. 처방과 접종과 안수기도는 비록 그 형태는 다를 지라도, 그것이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수행된다면 성령의 은사"로 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Ibid., 72).
즉 자연과 초자연의 구별은 거의 사라지고 오직 그가 어떠한 신앙 가운데서 사명을 수행하는가가 중요한 은사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받아가진 재능과 성령의 능력인 성령의 은사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재능은 인간의 능력이요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재능이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인 은사로 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서 12장을 중심으로 인간의 재능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사화하여 하나님의 교역에 사용할 수 있는가를 보고자 한다.
① 인간이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그 재능을 하나님의 제단에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 헌신할 때에 성령의 은사로 변화될 수 있다(롬 12:1).
② 인간의 재능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거룩하신 뜻을 따라 사용할 때 그 재능은 은사로 변화된다. 나의 재능이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용할 때 그 재능은 성령의 은사가 된다(롬 12:2).
③ 우리의 재능을 사용할 때에는 언제든지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재능은 믿음으로 사용할 때에만 성령의 은사화 될 수 있으므로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나의 재능도 은사화 될 수 있는 것이다(롬 12:3).
④ 우리의 재능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재능을 몸 안에서, 몸의 능력으로, 몸을 위해, 몸이 원하는 곳에 사용될 때 성령의 은사가 되는 것이다(롬 12:4∼5, 고전 12:7, 14:26).
⑤ 우리의 재능은 사랑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사들이라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
우리의 재능이 사랑으로 사용될 때에 그 재능은 은사화 될 것이다(롬 12:9∼10, 고전 13장).
⑥ 우리의 재능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나의 능력을 따라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즉 성령에게 붙들리어 사용될 때 그 재능은 은사화된다(벧전 4:10∼11).
⑦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재능이 사용될 때 그 재능은 은사가 된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발견하여 훈련할 뿐 아니라 재능들을 은사화시켜 전 교인들을 하나님의 교역자화시켜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을 위해 봉사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