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자는 잠시 받는 고통을 인내한다
사람마다 주어진 사명이 있다. 마땅히 해야될 일이 있다.
그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주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일을 수행하게 될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맛보게 되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쩔 수 없이 말씀전하는 일을 해야 했던 것 같다.
그 일이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으면 괜찮았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렘 12:8)의 말씀을 보면,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오히려 욕을 하고 조롱하며 놀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예레미야로서는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렘 20:9)
어쩌면 '에서'도 장자로서 누릴 축복보다는 그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야곱이 사겠다고 하니까 이 때다 하고 팔아 넘겼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지 힘 안들이고 할 수 잇는 일이란 없다.
넘어야 할 산을 넘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이지, 산 넘기가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하면 정말 어리석은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될 도리나 의무를 감당하다가, 그만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것은 그 일이 힘들어서도 그렇지만, 그 일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장래가 이렇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있게 일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이 시대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고 말하고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면 날씨가 몹시 덥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시대의 징조는 알지 하느냐고 묻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되어진 일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가야 될 길에 대해서는 말씀해주었다.
어느 길로 가면 성공하는 길이요, 어느 길로 가면 멸망의 길인지 분명히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요, 우리 인류의 적인 죽음을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길은 의로운 일이요, 영생의 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구실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이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요, 이웃을 사랑하고 자녀를 인격적으로 아끼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포기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