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와 진리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6. 1. 11:46

산수화

 

어느 해 국전에서 당선된 서양화 작품은 초등학교 어린이가 그린 듯 엉성한 그림이있었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인데, 그 코에는 빨간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열정이었다.

결국 이 그림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어느 풍경을 그리려 하기보다는, 작자가 나타내고 싶은 주제를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멋있는 무대와 유명한 배우로 구성된 배역, 그리고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있을지라도, 그 연극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면, 그 연극은 실패작일 것이다.

연극이 성공하려면, 관객에게 뭔가 진하게 와 닿는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어느 누구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려 한다면,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목표가 현실적이고 순간적이기보다는 영원하면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구약 창세기에서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에서'는 사냥하고 돌아와서 배가 고프던 차에 야곱이 끓이고 있는 팥죽을 보고 식욕이 더욱 강렬하게 일어났다.

그 순간에는 장자의 명분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이라는 헐값이 팔아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달았을 때에는, 그 장자권을 회복할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주 귀한 축복을 허락하셨다.

 '에서'에게 주어졌던 '장자권'보다 더 귀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목표이자, 축복의 근원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축복은 '에서'의 장자권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영원하고 값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될 귀한 가치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2)에서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자"고 권면하고 있다.
믿는 자에게 있어 삶의 주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 삶의 주제를 예수님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삶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이 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바보스럽고 미련할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조롱도 받으시고 비웃음과 침뱉음도 당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삶의 중심이 예수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이것이 참복이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