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영광의 미래 - 막 13:24∼31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27. 10:36

 

황혼

 

본문은 소묵시록이라 불린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종말 사상은 참으로 엄청난 변화와 개혁의 시발점과도 같았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다시 오실 때 일어나는 자연현상, 사회현상, 종교현상 등을 말씀하셨다.

 이런 현상들을 한 마디로 하면 혼란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에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질서를 문란케 한다.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질서를 부여하는 일조차도 그것은 혼돈이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인간이 세우는 질서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어를 혼란케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세상 곧 하나님 없는 세상은 더 무질서해진다.

혼란해질 뿐이다. 이 세상은 다양이라는 명목하에 혼란이 가중된다.

 주님의 재림은 이러한 혼란을 하나님의 질서로 돌려놓는 일이다.

주님은 혼란이 사라지고 완전한 질서가 세워지는 그 날을 말씀하셨다.

완전한 질서가 세워지는 것 그것이 곧 영광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기다리게 하셨다.

혼란이 가중되어도 영광을 바라보면 소망이 생긴다.

혼란을 이길 힘이 생긴다.

주님이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주님 자신이 곧 힘이다.


종말에는 혼란이 있다.


주님이 오실 무렵에는 혼란이 더 많아진다.

새벽빛이 오기 전 어둠이 잠시 더 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전 사탄은 더 발버둥을 친다.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표지이다.

어떤 혼란들이 일어나는가?

이단이 창궐한다. 영적 혼란이다. 민족간에 전쟁이 있다. 세계 질서의 혼란이다.

 지진과 기근이 있다. 자연질서의 혼란이다. 가족관계가 파괴된다.

윤리와 도덕의 혼란이다. 사람들이 피난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안식과 쉼의 혼란이다.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핍박은 더 가중된다. 사람들이 당하는 환란이 전무후무하다(막 13:19).

 사람들은 이 혼란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사실은 애를 쓴다는 것 자체가 미혹되는 일이다. 사탄은 사람들의 생각을 붙잡아 놓는다. 사람의 힘이면 무엇이든지 다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사람들이 자기의 노력을 과신한다. 노력만 하면 되는 세상이라고 떠들게 한다. 실상은 모두 자기 위주의 생각만 가지게 한다. 생각과 사상의 혼란 시대이다. 역시 혼란이 가중될 뿐이다. 혼란이 왜 멈추지 않을까? 사람들이 그처럼 노력하는데도 말이다. 온갖 지혜를 짜내고, 선을 행하며 사람들끼리 지혜를 모으는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란과 혼란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이 모든 혼란의 종식은 주님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탄이 해와 달과 하늘의 권능을 가졌다고 떠든다(마 4:8 참조).

그러나 그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다(25).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은 주님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28:18).

주님이 세상 권세를 결박시키신다.

주님은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하고 집을 차지하신다(막 3:27).

그리고 주님이 영광과 권능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왕이 개선하기 전 궁궐이 청소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주님이 오시는 모습 권능과 영광은 왕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동물의 여물통(구유)에 오셨다.

왕이지만 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왕을 알아본 사람은 동방 박사를 비롯한 소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만인이 우러러 보는 왕으로 오신다.

구름이 나타남으로 왕의 오심은 알려진다.

하나님의 임재가 만방의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모든 혼란이 일시에 사라진다.

주님의 권능과 영광이 크기 때문이다.

 큰 권능과 영광으로 혼란의 시기가 끝났다.

환란의 시대에 주님만 오시면 환란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러한 희망이 현실화되었다. 희망을 가졌던 모든 이가 그 희망의 성취를 맛본다. 주님의 큰 권능과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승리하고 개선한 왕이 나라를 평안케 하고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제시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이루신다.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를 먼저 따지지 말자.

주님이 어떻게 하셨느냐가 더 중요하다. 주님이 우리를 이미 구원하셨다.

우리에게서 구원받을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는데도 말이다.

 구원받는 믿음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다.

주님이 그 믿음조차도 내게 주신 것이다(엡 2:8).

이 구원은 모두 주님의 택하심에 의하여 된 일이다.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구원받을 사람을 택하셨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이 약속되었다. 내가 이 영광 속에 들어가 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환란 때에 믿음을 지켰는가? 그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라.

주님은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모으신다.

택하신 백성들을 모으신다. 그것도 당신이 부리시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모으신다. 땅 끝, 하늘 끝 구석구석 구원받은 사람들을 찾아 모으신다.

 환란의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아니한 택한 백성들을 찾아내신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권능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다 미치기 때문이다.

택한 백성이 환란의 와중에서 지쳐 있었지만 새 힘이 주어진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주님이 다시 추슬러 주신다.

 개선한 왕을 만나면 몸도 마음도 영도 새 힘을 얻는다.

주님의 개선하신 왕으로서 우리를 찾아내어서 새 힘을 주신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혹시 의심한 적이 있는가? 한번도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잊은 적인 있지 않았는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다 믿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못한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신 말씀에 비추어 나를 살펴본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죄성을 수술하여 도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히4:12).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재림 약속, 영광의 재림, 택하신 자를 모으는 일은 분명하다.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것이 임할 때를 어렴풋이 짐작만 할 따름이다. 언제 나타날 것이라고 짐작할까? 징조를 보고 알게 될 것이다.

무화가 나무가 자라 잎을 내면 여름이 온다는 것을 안다.

혼란의 때, 환란의 때이다. 이 때 이 사실을 알아라

 '인자가 가까이 오셨다. 인자가 곧 문 앞에 이르렀다.'

주님은 다시 확인하신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